문화융성위, 지침이 아닌 새로운 협력모델 탐구해야
문화융성위, 지침이 아닌 새로운 협력모델 탐구해야
  • 박호재 광주문화재단 정책기획실장
  • 승인 2014.01.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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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재 광주문화재단 정책기획실장
문화융성정책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슬로건과 함께 새 정부의 3대 국정기조 중의 하나로 거창하게 발걸음을 뗐다. 국가중심 발전모델에서 벗어나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의 선순환 구조 정립 차원이라는 설명이 함께 더불어 졌다.

이에 따라 문화융성위원회 출범 직후인 지난 해 여름, 각 지역을 돌며 지역의 의견을 묻고 수렴하는 순회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지역 나름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융성위는 이를 토대로 국가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러한 전례 없는 움직임에 대해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인들과 지역민들이 큰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시대정신이 올곧게 반영된 참신한 정책으로 여겨진 까닭이다. 특히 지역 순환 공청회가 열린데서 알 수 있듯이 지역과의 소통을 통해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새로운 가치지향의 태도가 신뢰를 안겨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융성위의 획기적인 움직임은 그쯤에서 발을 멈췄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그 탓인지 작년 하반기엔 거의 활동이 정지된 상태였다. 예산을 마련 못했으면 차라리 그렇게 숨죽이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년 말이 다가서자 이상한 행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소위 지침이라는 것을 지방 자치단체나 문화관련 출연기관들에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예산지원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어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솔직히 황당할 노릇이다. 예컨대 매주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운영하라는 지침 같은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주요 문화시설의 무료·할인 관람 같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화프로그램 확대 제공 같은 주문은 참으로 터무니없다. 일종의 신규 사업을 벌이라는 얘긴데,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사업들이 가능해 지겠는가. 설혹 추가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하더라도 지방정부에 재정부담을 떠맡기는 행위에 다를 바가 없다.

정부지침이라 그냥 손 놓고는 있을 수 없어 기존의 프로그램을 날짜만 바꿔 운영한다든지 하는 시늉이야 가능하겠지만 정책취지가 제대로 수용될 리 만무하다. 자칫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전락할 우려마저 깊다. 지역의 실정과 요구에 맞는 문화융성책을 가져가겠다는 융성위의 당초 취지도 크게 훼손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위상만 앞세워 지침만 하달하는 방식 자체가 짜증스럽다.

문화융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는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융성위를 만든 목적은 그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효율적으로 구현하자는 데 있을 것이다. 지침 내리는 일만 할 요량이라면 융성위의 존재 의미는 없다. 그 정도의 일이라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관련 부서 차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새정부 초기에 그들먹하게 팡파레를 울리며 출범한 융성위의 최근 모습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다급함에서 빚어지고 있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융성위는 지금 부터라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영역을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든 프로젝트의 첫걸음인, 일종의 과업설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 중 첫 번째 과업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지역문화진흥법 법 취지를 최대한 발현시키는 방향으로 문화융성위의 활동 지표가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지역문진법 따로 융성위 정책 따로와 같은 엇박자는 국정·국고 낭비에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째로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 융성위 정책에 최대한 반영되는 구조를 지녀야 할 것이다. 문화다양성 가치는 지구촌 어느 곳을 가릴 것 없이 이제 21세기 문화정책의 핵심 덕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문화다양성 추구는 지역문화 활성화 정책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다. 이를 위해 문화융성위원회 지역위원회 설치도 고려해볼만 한 사안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효율적 발현 차원에서도 검토할만한 정책으로 여겨진다.

지역문화진흥법이 의결되고 시행령 입안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융성위의 정책과업 설계는 매우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게 사실이다. 독자적으로 기획하고 지침을 내리는 방식이 아닌, 지역과의 새로운 협력모델이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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