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정, 여성이 일하기 좋아야 ‘여성친화도시’다
하순정, 여성이 일하기 좋아야 ‘여성친화도시’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1.08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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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친화도시 광주, 텃밭 일구는 여성일꾼들(9)
광주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 하순정 본부장

▲광산구 우산동에 위치한 광주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 하순정 본부장을 만나 지역내 경력단절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해독제’같은 역할을 하겠습니다.”

보통 일을 하던 여성들도 결혼을 하고 나면 육아와 가사에 전념을 한다. 아내의 의무보다 내 아이의 엄마로써 책임감이 더욱 무겁기 때문에 육아와 노동을 병행하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는 광주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이하 새일본부)가 지역의 여성 경제활동에 큰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출산, 육아, 가사부담으로 경력단절여성 지원

지난 2011년 광산구 우산동으로 이전한 새일본부 하순정(50)본부장을 만나 경력단절여성들의 상황을 더욱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하 본부장은 “출산, 육아, 가사부담 때문에 경제활동을 중단한 경력단절 여성들의 노동시장에 문을 두드리기는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장애물들이 많다”며 “새일본부에서는 지역사회 여성의 특성에 맞는 직업훈련과 중소기업과 함께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해 지난 2006년 남성중심적인 산업단지에 여성원스톱 취업지원기관인 희망일터지원본부를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2008년 광주를 비롯해 전국 5개 도시에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가 개소했다. 이를 (사)광주여성노동자회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후 제 17대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을 전담하는 센터를 확장시켜 여성인력개발센터, 여성회관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하여 ‘여성새로일하기센터’가 2013년 기준 전국에 118개소가 생겨났다.

현재 새일본부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하순정 본부장은 지난 2000년 광주에 온 뒤 광주여성노동자회를 접하게 되면서 여성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대전 출신이다. 대전 성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 84학번으로 입학했다. 행정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평범하게 행정고시를 보고 공무원을 꿈꿨다.

하지만 80년대 전국적인 민주화운동 물결이 거세게 일면서 그 영향을 받고, 87년 대학을 졸업한 후 대전민주청년연합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보수로 일했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 일조를 하던 일을 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을 지냈다고 한다.

민주화 물결 따라 청년운동에도 몸 담가

당시를 떠올리며 그녀는 “청년운동조직에서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의식화 교육을 하고, 새롭게 눈이 뜨였다”며 “92년에는 결혼을 한 후 평범하게 지내다가 96년 최초로 자활센터가 생겨나면서 자활운동에 동참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빈민들을 지원해주는 자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줄곧 대전에서 2000년까지 지내왔다. 이후 남편이 직장을 광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 모두가 광주에 둥지를 틀었다.

30대 후반이 돼서 광주로 처음 오게 된 그녀는 연고지도 없던 터라 막막했다. 열심히 몰두했던 일이 사라지고 3년 동안 광주에서 ‘경력단절여성’ 입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경력단절여성이 됐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취업상담,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갔다.

광주에 와서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광주여성노동자회였다. 2003년부터 광주여성노동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로케트 전기 여성노동자 8명 부당해고’사건을 손꼽았다.

하 본부장은 “당시 로케트 전기에서 8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육아 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 평점이 낮아 부당해고를 당했었다”며 “여성노동자가 출산하고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하고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을 어기고 성차별을 했었다”고 떠올렸다.

여성근로자로써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노동자회에서는 부당해고철회를 위한 대책위를 꾸리고 결국 연대집회를 통해 전원 복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또 하나 기억 남는 사건은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승진차별을 받고 있다는 상담건을 들었다.

여성노동자회 바탕으로 취업상담 전문가

그녀는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던 여성들은 10년이 지나도 직책이 오르지 않고 경리업무를 보는 수준에만 그쳐 부당함을 호소하러 왔었다”며 “심지어 5년차 늦게 들어온 남성 직원은 대리로 승진을 했고, 승진차별을 받고 여성노동자회에 찾아온 10명의 여성들은 입을 모아 호소하다 울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승진차별로 재소를 하고, 사실이 확인 됐지만 기업 측에서는 가장 근속기간이 오래된 여성근로자 한명만 대리로 승진시키는 수준으로 무마하고 넘어갔었다.

광주에 와서 본격적으로 여성에 초점을 맞춰 노동운동을 시작한 그녀는 “주로 정적인 독서회가 많았던 대전과는 다르게 광주에는 앞서나가 무언가 트여있는 의식들과 사회운동을 배울 수 있었다”며 “여성들의 문제도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이슈로 떠오르게 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전에서도 청년운동을 했지만, 진보적인 조직 내에서도 ‘여성’의 문제는 별개로 간주했다. 광주에 오고 여성노동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의 문제는 여성들이 여럿이 모여야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업 상담분야에서 줄곧 일 해오다 전역한 군인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일을 하고, 지난 2008년 광주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가 개소하면서 광주여성노동자회 주경미 대표와 시작을 함께 했다.

하 본부장은 앞으로 취업을 원하는 경력단절여성들에 대해 “양육을 하다 직업을 찾아 나설 때는 무엇보다 직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사회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정부에서도 청년취업, 노인일자리 등은 구체적이지만 경력단절여성들의 취업도 장기적으로 로드맵을 세우고 장기비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광주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돼야 진정한 여성친화도시에 부합되지 않나 싶다”며 평범한 여성과 고학력 여성이 함께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의 청사진을 그려본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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