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역 언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 남궁 협(광주전남민언련 상임대표)
  • 승인 2013.12.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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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 협 동신대 교수
세밑이 가까워질수록 밀려드는 울분과 답답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래도 막막하게 새해를 맞을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작은 사건 하나가 사람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선사했다. ‘안녕...’ 대자보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한 대학생의 고백이 많은 사람들에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사실 그 내용은 특별한 게 없었다. 철도민영화 문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 밀양 고압송전탑 문제 등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들은 이미 언론에도 보도가 많이 돼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언론들에는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한 젊은이가 쓴 대자보에는 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이 보도되길 원하는 것을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론이 보도하는 모든 내용은 누군가를 위한 홍보일 뿐이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이 언론을 비난하며 던진 말이다. 지금부터 70여 년 전에 했던 이 말을 지금 우리 언론에 적용해도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 이 땅에 언론이 있기나 하는가 싶을 정도로 언론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언론이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자보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던 것은 기성 언론들과는 달리 대자보의 내용은 사실을 직시하게 했고, 숨죽이고 있던 양심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가장 기초적인 사실조차도 배제하거나 비틀고 나서 그 위에다 객관성이니 공정성이니 하는 그럴듯한 포장지만을 덮은 모습이다. 사실이 빠진 객관보도는 사기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이곳 광주의 언론 상황을 비아냥댈 때 하는 말이 있다. 광주엔 대체 신문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많은 언론사들이 난립해 있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만큼 지역민들에겐 언론의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다. 나름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도 없진 않겠지만 이렇게 지역 언론을 폄하하는 정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 그러한 노력도 헛수고일 공산이 크다.
그래서 지금 지역 언론에 관한 한 가장 절망적인 것은 절망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는 ‘무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광주는 ‘민주의 성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폐적인 비민주의 회색도시로 퇴락해가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먹고사니즘’에 허덕인 나머지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이 틈을 타 지역의 낙후성을 빌미로 ‘발전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개발독재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다운 삶의 터전에 관한 담론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렇듯 소통(언론)의 부재는 삶의 ‘의미 부재’를 가져와 결국엔 광주를 ‘사람 냄새’가 사라진 황폐한 도시로 만들고 만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지역에서 가장 홀대받는 언론이 희망의 대안이어야 한다. 광주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복원하려면 무엇보다도 소통의 길을 터야 한다. 그러자면 언론은 지금 해오던 모든 관습과 행태, 한 줌의 기득권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부박한 시장논리에 어쭙잖게 걸치고 서서 언론이기보다는 생존 게임에 더 몰두하는 괴물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언론을 위한 상상력이 발동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자보 사건은 언론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무엇이 언론 수용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를 새삼 알려 주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은 ‘고통의 윤리학’인 것이다.
이미 지역 언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두려울 게 뭐 있는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지혜를 함께 모았으면 한다. 그래서 2014년은 지역 언론이 새로 태어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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