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시장 윗길 큰 샘 ‘샘몰’ 도로개설로 사라져
양동시장 윗길 큰 샘 ‘샘몰’ 도로개설로 사라져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3.12.1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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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동 쪽쪽골 큰시암은 보존되어 대조적
▲ 양동 큰시암은 사라졌지만 북구 중흥동 쪽쪽골 큰시암은 마을에서 보존하여 유지하고 있다.

시장은 서민의 애환과 정서가 묻어 있는 곳이다. 아침에 가져간 물건은 저녁에 갚기도 하며, 서로 정하기에 따라 그달 그믐날, 길게는 추석대목이나, 섣달 그믐 대목에 어김없이 갚는 일은 시장사람들의 정감 어린 옛 추억일 것이다.
이젠 카드와 마켓이 생기면서 그런 정취는 사라 졌어도 아직도 시장에는 따듯한 온기가 남아 있다.
며칠 전 양동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릴 적 엄마 손잡고 큰 샘거리 따라 몸뚱이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의 속칭 피난민촌이라 불리는 동네를 요리조리 빠져 나와 신작로 건너편 천변의 빨래터의 아낙들, 지금의 복개된 상가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광주문화방송국이 있는 덕림산은 광주시민의 공원처럼 즐기면서 쉬는 놀이 공간이었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친구들과 이웃과 함께 올라 즐기던 공간이었다.
60~70년대 놀이문화가 없을 때 그곳에서 장구를 치고 놀기도 했고, 이곳의 암반수가 물맛이 온순하며 좋기로 소문나, ‘샘몰’ 또는 ‘큰시암’이라고 했다. 양동시장의 식당, 주막에서 이 시암물을 사용했다.
이때 물지게로 물을 배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서민도 있었다. 양동시장 윗길의 피난민 촌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식당가나, 주막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 골목이 너무 좁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물장수들은 가재걸음으로 물지게를 지고 옆으로 걸으면서 배달을 했다. 그 좁은 골목에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찌 기술적으로 상대방에게 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다니는 기술은 최고의 솜씨였다.
이런 샘터가 십여 년 전 동네에 목욕탕이 생기면서 수량이 급속하게 줄어 마르면서 결국은 폐쇄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더니 남구 월산동과 서구 양동사이의 구성로길에 옛 광주농협 청과물공판장 옆의 작은 골목길이, 최근 들어 소방도로 개설인지 아니면 무슨 사업인가는 몰라도 그 작은 골목이 확장되었다.
그러면서 양동시장과 함께 사랑받던 큰 샘이 이 공사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큰 샘은 시장상인 그리고 양동, 덕림마을, 돌고개 자락의 산동네 사람들과 광주천 건너 누문동 사람들까지 식수로 각광을 받았던 인기 좋은 샘이었다.
샘터 주변의 생존하신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80년대 초반까지는 음력 정월 첫 용날(辰日)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큰 샘의 용왕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한다.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정결한 집을 골라 당주로 뽑고, 제물을 준비하고, 제삿날이 되면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물을 청결하게 청소하고, 저녁이 되면 우물 앞에 정성들여 만든 제물을 진설하고, 제관이 술잔을 올리고 우물 주변에 술잔을 뿌렸다.
이어 축문을 읽고 마을의 공동 소지(燒紙)를 올린 후 마을 사람들 개인에 따라 소지를 올리기도 하며, 농악이 울려 대고 우물주변과 동네를 돌았다고 회고를 했다. 이런 풍속과 샘터가 사라진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이제는 샘도 샘굿을 하는 농악소리도 우리의 좋은 문화가 점점 없어져 아쉬움이 남아 있다.
반면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북구 중흥동 ‘쪽쪽골 큰시암’은 샘에 대한 고마움과 우물이 지닌 가치를 깨닫고 중흥동에서 2012년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이 샘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동네에는 아직도 큰 샘의 흔적이 남아 '큰샘이발관', '큰샘마트'가 마을 사람들과 친숙하게 만나며, 옛 생각을 추억하게 만들고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옛것을 보존하는 ‘중흥골 옛 숨결을 잇는 큰 샘 보존사업’을 통해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양동의 큰시암과 비교가 되는 문화의 차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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