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기록, 그 너머의 이야기
상실의 기록, 그 너머의 이야기
  • 권준환 수습기자
  • 승인 2013.11.2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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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박소영, 대안학교 오름 쌤
20대 통과하며 겪은 감정을 노래

대안학교 오름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소영 선생님을 찾자 한 여자아이가 안에 대고 소리쳤다.
“소영 쌤! 손님 왔어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한 여성이 안에서 나와 나를 맞는다.

그녀는 오름에서 음악, 미술, 공예 등을 가르치고 있는 박소영(33) 선생이다.
그녀는 청바지를 입고 카키색 스웨터에 보라색 체크무늬 남방셔츠를 걸쳤으며 붉은 빛의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 전기 히터를 가져다가 불을 켜줬다.
“많이 추우시죠. 이거라도 틀어드릴게요.”
그러고 나서 찻잔에 둥굴레 차를 내왔다.

둥굴레가 물에 우러나듯 그녀의 이야기도 조금씩 우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참 좋아했다.친구들과 같이 음악감상 모임을 만들어 밴드를 쫓아다니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밴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악기를 하나씩 배우고 여성4인조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좋아서 했기 때문에 밴드공연은 사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인디밴드다 보니 멤버가 항상 부족했다. 멤버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파트가 계속 바뀌었다.

또한 취업 때문에 보건대학교로 진학해 졸업했지만 일이 그녀와 맞지 않아 피아노 학원에서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음악활동을 했지만 멤버 문제로 힘들고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밴드를 접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넷 이었다.

그래서 백화점에 들어가 코너에서 샌드위치와 호떡 등을 만들어 파는 곳에서 일을 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또는 아침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건강식품 회사의 근무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전에 근무하던 곳보다는 안정적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점점 음악과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하겠지. 그런 생각만 했었어요.”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센터나 광장을 해도 4년 직(대학교)을 나온 사람을 쓰니까 학교를 찾다 찾다 전주대 도시환경미술학과에 들어갔어요. 음악을 좋아하는데 미대를 간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음악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고, 그 행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다 겪고 졸업을 했지만 취업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일단 전에 근무하던 건강식품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공부도 힘들게 하고 왔는데 다시 제자리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무렵 그녀의 주변에서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아는 언니의 자살. 그리고 주변 사람이 많이 아팠고 아버지의 건강 상태도 나빴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굴곡져 돌아가는 인생길에 좌절했고, 헤매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겼다. 그러다보니 음악을 대면하기 싫었다.

그때 친한 친구가 그녀를 보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넌 항상 뭔가를 하고 싶어서 눈이 반짝반짝 하던 애였는데 지금 네 눈은 동태눈깔이 됐어.”
그녀는 그때 음악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나이 서른이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후 그녀는 콜센터 야간근무, 외부 출장강의 등을 하며 음악을 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다 대안학교 오름에서 정식으로 음악수업을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권유로 교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음악으로 누군가를 가르칠 계획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을 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나 힘든 것을 해소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오름의 박은영 선생은 “아이들이 예술가의 삶을 옆에서 보는 것 자체가 큰 교육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을 다시 시작하고 1집 앨범이 나올 수 있게 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앨범의 제목은 ‘상실의 기록’이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감정과 사건들이 이 앨범의 큰 주제다.

그녀는 광주에서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서 음악 할 생각 없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항상 ‘없다’였다.
“광주에서 음악활동을 계속 하면서 광주만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할 것인가와 공연을 보러 어떻게 광주로 오게 만들 것인가가 요새 제 고민거리에요. 광주와 전남권이 가진 특별함도 하나의 공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걸로 계속 공연해보고 싶어요.”

지금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거리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박소영. 누구나 겪어봤고, 겪고 있고, 또 겪어야 하는 20대의 감정들을 노래로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미소는 현재 아름답다.

박소영 1집 앨범 '상실의 기록'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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