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젊은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마음이 젊은 노인은 노인이 아니다
  • 권준환 수습기자
  • 승인 2013.11.13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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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 우산동 ‘희망새김 공방’ 노종남 공방장

지어진 지 30년 된 2층짜리 아파트단지 옆의 좁은 도로를 지나 한 공방에 도착했다. 공방의 이름은 ‘희망새김 공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절모를 쓴 서글서글한 눈매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맞는다.
“찾기 어려웠을 것인디 잘왔네. 차는 쩌그 옆에 대놓믄 돼요”

그는 잉계마을 공동체 사업의 일환인 희망새김 공방의 노종남 공방장이다. 그는 주민들이 목공예를 배울만한 장소와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흔쾌히 자신의 공방을 개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1945년 나주 공산면에서 태어났으며 중․고등학교는 광주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아이들 키우면서 벌어먹고 살기 위해 바쁘게 살아왔다. 그의 두 딸은 학교 선생님이고, 막둥이 아들은 은행에 취직했다.

공방의 벽면에 눈에 띄는 몇 가지 물건이 보였다.
꽹과리를 새롭게 고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벽걸이 시계는 칠이 벗겨지고 빛이 바랬으며,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 컴퍼스는 여기저기 얼룩이 지고 닳았다.

이 컴퍼스는 1977년 광고사를 시작하면서 광주에 정착할 때 만든 것이라고 했다. 벽화를 칠하기 전 이 컴퍼스로 모든 기획을 했다고 한다. 30년 세월의 무게가 담겨있는 컴퍼스는 그의 친구나 다름없다.
“지금은 그거(컴퍼스) 안써요. 장비가 좋아서. 그래도 버릴 수는 없제. 나랑 함께한 세월이 얼만디”

다른 벽면엔 갖가지 크기의 붓이 걸려있었다. 그는 65세 때부터 취미로 서예를 시작했다고 했다.
서예를 할 당시 그의 호는 유석(滺石)이었다. 그래서 공방의 이름을 유석공방(滺石工房)으로 지었다. 유석은 물 흐를 유(滺)에 돌 석(石)자를 썼다. 흘러가는 물에 돌이 연마된다는 뜻이다.

이 유석공방이 지금은 희망새김 공방으로 새 출발 한 것이다. 벌어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서각기술과 취미로 배운 서예가 좋은 기회를 만나 주민이 원하는 곳에 쓰인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했다.

그가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대접할 것이 믹스커피 뿐이라며. 괜찮다고 해도 등을 떠민다. 찻집이 있는 주민사랑방으로 가는 길에 메모를 한참 하고 있던 내 쪽으로 차량 한 대가 좌회전했다.
꽤 거리가 있던 것으로 봐서 안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날 손으로 막아 세웠다.

어릴 적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에 가던 때가 생각났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가던 트럭 때문에 아버지는 급브레이크를 밟으셨고,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를 손으로 막으셨다.
노 공방장 역시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에 흔쾌히 주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으리라.

그는 마을 공동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다 자식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벌어먹고 살아야 하믄 못하제. 자식들이 용돈이라도 주고, 술값이라도 준께 홀가분하게 할 수 있는 것이제. 그렇게 살제”

그가 살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자식들이 모두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때라고 한다.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그도 역시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광고사를 할 때, 지금같이 크레인이 없고 사다리로 했는디 내가 키가 작은께 높은데서 꼽발딛고 일을 했어요. 그때 친구들이 밑으로 지나가믄 아는 체를 못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어. 챙피해서. 그때만 해도 그 일이 제일 밑바닥 일이었응께”
그는 그 당시의 심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우산동이 어려운 분이 많은 동네라고 하면서 공방봉사단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지역봉사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은 공방봉사단에 노종남 공방장과 최숭기 씨 단 둘만 있다. 최숭기 씨는 회사를 은퇴하고 건강사랑봉사단장의 권유로 노 공방장과 대화한 후 인연을 맺게 됐다고 했다.
최 씨는 “봉사활동이 활성화돼서 노인들의 손․발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노종남 공방장은 제 2의 인생을 기획하고 있다.
“돈 벌라고 생각 안해요. 그냥 마음 놓고, 시간 놓고, 즐겁고 아름다운 노년을 살아볼라고”
그는 그렇게 허허 웃었다.

갑자기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노년(김소엽) 中
아직도 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도 꿈꾸며
무엇인가를 배우는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더욱 푸르다

육신은 움직일 수 없어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아직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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