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광풍(狂風)이 말해주는 것
오디션 광풍(狂風)이 말해주는 것
  • 나윤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3.10.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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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수/칼럼니스트

립 싱크로나이제이션(Lip synchronization)을 줄인 립싱크는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실제 노래는 부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는 것을 말한다. 반주만 녹음된 테이프에 맞춰 금붕어 마냥 입을 방긋거리는 경우도 있고 반주와 노래를 통째로 립싱크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립싱크는 80년대 후반 격렬한 댄스 가수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유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로부터 무려 20여년을 무대 위에서 노래는 부르지 않고 입만 벙긋대는 붕어 가수를 가수라고 환호했으니 기가 차고 억울하다. 일부에서는 공명이 안 되는 체육관이나 드넓은 야외 공연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립싱크를 옹호하기도 한다. 한류가 뜬 것도 립싱크 덕분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최근 오디션프로 유행은 립싱크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창력 보다는 춤과 비주얼로 성공하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두고 보기 싫다는 반란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금 방송을 보면 과히 오디션 광풍이라 할 만하다. 한 케이블 TV가 ‘슈퍼스타 K'라는 프로를 내놓았을 때 만해도 미풍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했다.

아마추어 노래 자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슈퍼스타 K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더니 ‘슈스K’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광풍으로 돌변했다. 시청률 20%대를 기록해 웬만한 공중파 방송 인기 프로를 훌쩍 넘어섰다. 참가자만 1백만명이 넘어 선다니 광풍이라 해도 지나 치지 않다.

이제는 방송프로마다 오디션 프로 하나쯤은 있어야 체면이 설 정도다. MBC나 SBS 같은 공중파도 황금시간대에 버젓이 오디션 프로를 내보낸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중적인 가수들이 부르는 쇼프로나 아마추어 가수들의 경연이 황금시간대에 편성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날 오디션에 누가 떨어졌는지 정도는 알아야 사람 행세(?) 하는 판이다.

출연자 뿐아니라 심사위원, 방청객마저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는 세상이다. 이쯤되면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한다.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시청자들의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립싱크가 판을 쳐도 사람들은 누가 노래 잘하고 누가 얼굴로 승부하는지 다 안다. 음악의 가장 기본인 노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다.

직접 부르는 노래와 연주는 입맛 벙긋거리는 CD 따라 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감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도 안된다. 이게 시청자 주권시대 대중의 욕구다. 실로 20년만에 나타난 변화다. 대중도 “사이비 가수는 가라”고 준엄하게 경고한다. 경연장에서 노래로만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를 경험한 대중들에게 억지스런 춤이나 형편없는 노래 실력으로 사랑받을 수는 없는 세대가 도래했다.

이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이다. 80년부터 2010년까지 장기 집권을 누렸던 립싱크는 가수가 노래를 못해도 누가 시비 걸지 못했다. 온통 부르는 노래마다 춤추고 흔들면 끝이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시대 조류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갔다. 미디어의 변화도 오디션 천국에 한 몫을 했다. 이제는 시청자도 누가 립싱크 하는지 다 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면서 당장 방송국에 항의하는 시대다.

인터넷서도 난리가 난다. 누구든 라이브가 안되면 그만둬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비롯된 라이브 공연이 막강한 지상파 방송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력으로 한번 견줘 보자는 도전장이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 기존 가수도 혼신을 다해서 부르지 않으면 디지털 쌍방향 미디어 시대는 곧바로 퇴출되고 만다. 대중은 이제껏 사이비 가수에 농락 당해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농락 당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중이 눈을 뜨는 날 사이비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 같은 오디션이 없었다면 립싱크 가수들에게 완전 무결하다고 극찬 했을 것이다. 립싱크 20년 세월을 훌흘 털어 버리듯이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누가 사이비인지를 골라 낼 필요가 있다. 정치인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누가 립싱크 하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은 표로 심판해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동양 사태에서 보듯 서민 등쳐먹는 경제인들은 사이비 립싱크 경제인이다.

왠만하면 수천억씩 서민 등쳐먹는 세상이다. 눈크 게 뜨고 봐야 한다. 이제는 대중이 일어나 립싱크 그만하라고 외쳐야 한다. 오디션에서 깨끗이 승부해 누가 진짜 가수인지 밝혀내듯이 “사이비는 가주세요” 라고 해야 한다. 신동엽 시인이 일찍이 말했듯이 “제발 껍데기는 가라”. 이것이 늘어나는 오디션 프로가 말해주는 경고다. / 나윤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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