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요청하는 정치인 - 경계인으로서 정치인
시대가 요청하는 정치인 - 경계인으로서 정치인
  • 장복동 전남대 철학과 강사
  • 승인 2013.10.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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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복동 교수
“세상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세상의 즐거움은 뒤에 즐거워한다.” 남송(南宋)의 재상 범희문이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정치적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 말이다. 짧지만 범상치 않은 이 구절을 새삼스레 서두에 꺼낸 것은 요사이 정치를 실종한 우리 정가의 풍경을 일깨우는 경구로서 적절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필자가 사적 자아를 공적 자아로 투사하여 헌신하는 국가주의를 미덕으로 찬양하거나 온전히 자기를 버린 공동체로의 몰입을 시대정신으로 치켜세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공자가 화해(和諧)를 추구하되 결코 동일성으로 수렴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정치철학적 테제로 강조한 것은 개인의 주체성·자율성을 견지하면서 차이를 차별로 치환하여 타자를 배제하고 규제하는 전체주의 정치문화를 경계해서이다. 이미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듯이, 우리의 정치현실은 시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당리당략만을 목표로 하여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정치(情治)’만이 횡행할 뿐이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타협의 예술’, ‘정치(正治)’는 실종되고 경직된 정파주의, 교조적 이념주의로 채색된 의미 없는 말들만이 삶의 주변을 배회한다. 이제 정치 과잉의 시기에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정치인들의 입을 맴돌던 ‘민심’·‘민생’은 한갓 정치선전을 위한 장식도구로 전락한다. 우리 정치에서 정쟁을 끝내고 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좋은 정책을 입안하고 나라살림을 감시하는 정치인 본연의 의무로 복귀하겠다는 의지는 종적을 찾을 수 없다. 미해결된 채로 흘러가면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히겠다는 상승된 투쟁의지만이 정치적 사태를 지배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소아적(小我的) 정치의식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력 상실·정치부재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정보 권력과 결탁하여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사태를 호도하고 진실을 덮는데 혈안이 된 여당과 정치권력에 있다. 물론 사태의 근본을 정확히 꿰뚫지 못해 여당에 휘둘리면서 우와좌왕하는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서도 정치부재의 실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문화에서 ‘다름’을 인정하여 상호존중과 상호의존의 맥락에서 소통되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 ‘너’, ‘타자’는 억압하고 배제하여 종국에는 굴종시켜야 하는 ‘밖’의 존재, 단절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공존과 화해의 정치를 위한 정치적 삶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가 정치현실에서 절망하고 새로운 삶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사이드의 말처럼 정치가들이 전반적인 과정보다는 최종적인 결말에만 관심들 두고 모든 것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실종의 시대에 우리가 요청하는 진정한 정치가는 비전을 가지고 동시에 그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경세가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인들에 요청되는 것은 선명한 이념적 정체성과 정파에의 철저한 귀속의식으로 경계를 획정하는 중심/주변의 논리보다는 경계인·주변인으로서 정치적 삶이다. 왜냐하면 주체성/정체성으로 위장한 맹목적 자기 확신, 과도한 자기신념은 타자에 대한 강압과 새디즘적 폭력으로 분출되는 정치의 역기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집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은 나의 행복”이라 말했고, 아도르노가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덧붙였듯이 안주의 공간을 넘어서 ‘추방’의 세계로, 인식의 ‘주거상자’로부터 탈주하여 정쟁과 반목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청되는 것은 투쟁과 대립의 정치가 지닌 선명성에의 유혹을 떨치고, 고식적(姑息的) ‘상호주의’를 넘어서 아무런 상호간의 의무 없이 부탁과 요청을 들어주겠다는 비대칭적 특징을 지닌 책임의 원칙이 지배하는 ‘우정의 정치(the politics of friendshi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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