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피아노를 파는 방법
중고 피아노를 파는 방법
  • 문틈/시인
  • 승인 2013.09.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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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방에는 오랜 동안 아내의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피아노 때문에 나는 늘 비좁은 방에서 불편하게 지내왔다. 한때 아이들을 기를 때 음계를 가르쳐주려고 잠시 이용했을 뿐 그 후 오랜 기간 피아노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있었다.
구입 당시에는 꽤나 비싼 피아노였지만 당시 유행으로는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것이 마치 무슨 신분증명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그 비싼 피아노는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고래 이빨 같은 하얀 건반은 뚜껑에 덮인 채 오랜 햇수동안 방 한 켠을 점령한 채 지내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내는 엊그제 그 피아노를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내가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구입가의 10퍼센트나 될까말까한 값으로 중고 피아노상에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나서 든 생각은 무엇 때문에 별로 소용도 없는 피아노를 비싼 돈을 들여 구입했었는지 참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별로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는 뭣하나 그 대표적인 것이 실내 에어컨이다. 그것 역시 피아노, 에어컨, 자동차 해서 3종 신기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구입해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로 지내왔다. 전기료 부담이 너무 많아서 그저 두고 보고만 지냈던 것이다. 그 오랜 기간을 에어컨 없이도 선풍기 두 대로 여름을 지낼 수 있었다. 아마 저런 구식 에어컨은 누가 사겠다는 사람도 없을 터이다.
집안을 둘러보면 온통 자자분한 물건 천지다. 물건들이 온 집안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하나하나 눈길을 보내면서 따져보니 대부분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한두 번 쓰거나 말거나 하고는 거의 버려진 상태로 남아 있다.
음악을 듣는 기기들도 몇 개나 있는지 모른다. 열 종류는 될 성싶다. 아주 작은 것으로는 약국에서 사온 연고들도 수두룩하다. 한두 번 쓰고는 놓아둔 것들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고 그냥 서랍을 차지하는 것들이 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이는 과정인 듯도 하여 많이 후회스럽고 스스로가 어리석게 여겨진다. 신혼시절 젊은 날 몇 번 찾아뵈었던 법정 스님이 거처하는 방이 너무도 좋아보여 내 방의 네 벽을 창호지로 하얗게 바르고 방안에는 작은 앉은뱅이 책상 하나, 그리고 그 우에 책 한두 권만 두고 생활하려 했다가 아내한테 무슨 수도생활하러 결혼했냐면서 되게 당한 뒤로 이처럼 별 소용도 없는 물건들이 집안을 차지하게 되어버렸다.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중국의 호요방(胡耀邦)이나 등소평(鄧小平)처럼 숟가락 하나, 밥그릇 하나, 책 몇 권, 그리고 늙음을 지탱하는 지팽이 하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든다. 저 놈의 집안을 어지럽히는 세간살이가 내가 땀 흘리며 벌어온 돈으로 구입했다고 생각하니 사람은 이렇게도 멍청하고 우둔하게 살아올 수도 있나 싶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과연 몇 개나 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옷 한두 벌과 컴퓨터 한 대를 포함해서 몇 가지가 안될 것 같다. 정말 너나할 것 없이 집에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이기 위해 '뼈빠지게' 일해오는 것은 아닌지 누구에겐가 묻고 싶다. 그러면서 늘 돈이 모자라고 툴툴거린다.
단순소박하게, 단출하게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누가 빠까뻔쩍한 외제차를 구입했다 하면 난들 질소냐 하며 더 좋은 외제차를 사들이고, 누가 비싼 장롱을 들여놓으면 역시 더 비싼 장롱을 구입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냔 말이다.
어디 나 같은 졸부(拙夫)의 살림살이뿐이랴. 지자체나 국가도 국민의 피땀인 세금을 거두어 허투루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내 가슴은 답답해진다. 국회의원, 교수, 공무원, 그리고 국민들까지도 세금을 보면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연구기금, 무슨 지원금의 대부분은 내가 주위에서 본 것들로 판단하건대 거개는 눈먼 돈 취급받는 것은 사실이다.
지자체나 나라가 세금을 아껴서 꼭 필요한 것에만 세금을 쓴다면 지금처럼 마른 행주를 짜듯이 세금을 짜내려 생고생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아니 돈이 남아도는 지자체, 국가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집안에 불필요한 물건을 안들여 놓기로 결심한 나처럼 지자체와 국가도 단단한 각오를 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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