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난민촌 현지를 가다2>시리아 난민의 꿈 ‘샹-제리제’ 자타리 난민촌
<시리아난민촌 현지를 가다2>시리아 난민의 꿈 ‘샹-제리제’ 자타리 난민촌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3.08.29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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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학살 화학전 피해 새로운 도망자 줄 이어

지난 8월 7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21일 귀국했다. 광주의 젊은 전문음악인들의 모임인 그레이션스(Gracians) 음악단체가 요르단으로 피난 온 시리아 난민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힐링치유와 음악적 재능기부를 펼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레이션스는 지난 2007년 지역 성악가, 연주자 등 22명이 모여 결성한 단체로 외국인 노동자돕기음악회 등 재능기부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는 지역사회 봉사단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사태가 더더욱 심각하다. 난민이 200만명을 넘었으며, 자국민을 향하여 화학탄을 사용하는 등 심각성이 너무 깊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난민 2백만 계속 늘어 포화상태

요르단 북쪽 제2의 도시 자르카를 비롯하여 국경 인근도시 알 마프라크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군부대 근처의 자타리 캠프, 그리고 시리아 국경에 있는 자비르 등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만났고 그레이션스의 공연도 성황리 열렸다.
그곳에는 광주 출신의 해외자원봉사자 서정섭, 김현정 부부가 요르단 봉사단체와 함께 요르단 자비르마을에 ‘희망의 학교’를 세워 영어, 음악, 미술, 태권도로 그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
시리아내전의 원인은 뭔가? 이집트, 리비아에서 시작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 이른바 쟈스민 혁명의 열기로 촉발된 시리아의 민주화 열기가 내전으로 확산되어 버렸다. 이들은 내전을 피해 매일 수천 명씩 시리아를 떠나 주변 국가인 요르단, 터키,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역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며칠 내 서방국가들의 공습이 시작 된다고 하니, 더 많은 난민들이 자국을 빠져 나갈 것이다.
시리아는 1963년에 이스라엘과 전시상태라는 이유로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1970년 하페즈 알 아사드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되어 30여년을 독재통치하다, 2000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바샤르 아사드가 권력을 승계 받아, 34세에 헌법을 수정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마치 북한의 김정은을 보는 듯 했다.
2011년 3월 15일 전국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열자 그때부터 강경진압으로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를 동원하여 양민을 학살했다.
요르단 국경지대 시리아 남부 다라야(Daraa) 지역은 민주화 최대 항전지역으로 무참하게 숫한 인원이 학살당했으며, 숫한 시신이 즐비하게 널브러진 사진들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 봉사단체, 난민 위해 상설 교육키로

자타리 캠프는 6만 정도의 수용시설 시설의 캠프다. 허허벌판에 철조망 쳐 놓고, 그 안에 유엔난민기구에서 제공한 천막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며,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이 있다. 이제는 난민이 16만 명(8월 기준) 정도로 늘어나 요르단 제5의 도시로 커져 버렸다. 9월에는 또 다른 캠프를 설치할 계획이다.
기자가 자타리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는 출국을 며칠 앞둔 토요일이었다. 국경지대 자비르 마을에서 머물며 요르단 NGO 회원집과 암만에서 등에서 숙식하면서, 자르카와 알 마프라크를 다니다 시간을 못내 결국 허겁지겁 이날 방문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Korea Town도 형성돼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기아대책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또 한국 젊은이들이 난민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한국의 뜻있는 일부 젊은이들이 현지인들과 NGO를 결성하여 난민촌에서 시범적으로 한국 태권도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는 주 1회를 하지만 당국과 협의를 통해 상설운영을 준비 중이라고 동행한 NGO관계자가 설명한다.
삼엄한 경비가 조금은 엄숙해 보였고 정문 초소에는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으로 보이는 일행들이 줄을 서서 심사를 대기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1문을 통과하여 한참을 들어가니 제2문이 나온다, 이곳은 더더욱 삼엄한 경비로 이곳에 들어가면 난민촌의 중앙로가 되며, 좌측으로 캠프의 사무동이 있는 곳이다.

난민촌에서도 사랑은 싹틔우고

기자 일행은 캠프 사무동으로 들어가 목적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 하였으나 휴일이라서 경호와 안내해줄 인원이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그리고 취재는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가능하면 난민촌 내부 깊숙하게 들어가지 말고 지갑 귀중품 등을 잘 단속하라고 이야기 한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Zaatari refugee camp이며 난민촌에 자체 택시서비스와 학교, 병원, 축구 경기장과 함께 약 3천개의 상점이 형성되어 있다. 철물점, 헌옷가계, 미장원, 터기 물 담배, 야채가계, 레스토랑과 슈퍼가 있고, 심지어 이동용 국제전화까지 할 수 있는 공중전화처럼 유선전화를 무선전화기로 들고 영업을 한다,
난민들은 생활환경이 높은 중산층이 대부분이며, 도심지역에서 살았고 부유한 경제적 환경 속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기에 그들의 삶의 기대치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올 때 어찌 하다 보니, 옷가지 달랑 들고 나온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시리아 화폐가 통용되고 곳곳에서 난민촌의 로맨스를 꿈꾸는 청춘 남녀들이 손을 정겹게 잡고 데이트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곳을 ‘Champs Elysees'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샹(Champs)은 천국, 낙원, 널판을 이야기 하며, 엘리제 (Elysees)는 그리스어 엘루시아 페디아(Elusia Pedia)에서 나온 말로 “영혼이 돌아가는 곳”을 의미한다.
결국 낙원들판은 곧 천국을 의미하기도 한 ‘샹-제리제’는 어쩌면 시리아 난민들이 꿈꾸는 평화이다. ‘살람 알라이쿰’(Salaam Alaykum)이란 의미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따뜻한 훈기가 있는 쉼터,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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