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상 ⑬ 형제는 용감했다
5월 단상 ⑬ 형제는 용감했다
  • 김상집
  • 승인 2013.08.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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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집

영창은 각 소대별로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내부는 긴 삼각형 모양이다. 나는 6소대에 수감됐다. 영창 안은 철창 앞과 한쪽 끝의 화장실까지의 통로를 제외하고는 20센티 높이의 마루로 되어 있다. 군대식의 명칭인 소대인 만큼 각 소대별로 최대인원은 40명이었지만, 첫날밤을 새운 사람들은 한방에 130명 정도였다. 방이 6개이니 약 800명 가까이 영창 안에 붙잡혀 온 셈이었다.
화장실은 남쪽 귀퉁이에 딱 하나 있었고, 화장실 옆 통로에 수도꼭지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에 가려면 철창 앞으로 나가 영창 안을 감시하는 헌병에게 깍듯한 경례를 붙이고 허락을 얻어야 했다. “충성! 김상집, 화장실에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경례 자세가 불량하거나 목소리가 작으면 몇 번이고 다시 하도록 했다. 헌병 녀석이 고개를 까딱 하면 허락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쩌랴! 화장실은 하나고 수감된 포로들은 130여명이나 되어 화장실은 항상 밀려 있었다.
27일에 도청이나 YWCA 등지에서 잡힌 사람들은 현장에서 옷 등짝에다 ‘총기휴대 극렬분자’ 등으로 쓰여 분류되었다. 그리고 상무대 연병장에서 분류될 때에도 총을 들었는지의 여부가 일차 취조 대상이었다. 내가 영창에 들어가서 보니 포로들의 웃옷 등짝에는 빨간 글씨로 ‘총기휴대 극렬분자’라고 적혀 있고 글씨 위에 가위표가 그어져 있었다.
나도 녹두서점에서 맨몸으로 잡혔지만 등 뒤에 빨간 글씨로 ‘총기휴대 극렬분자’와 가위표가 그어져 있었다. 등에 ‘총기휴대 극렬분자’라고 적힌 사람들은 먼저 곡소리 나게 두들겨 맞고 나서야 취조를 받았다.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서 ‘총기휴대 극렬분자’라고 적힌 웃옷을 통풍구 밖으로 던지고 나오자, 나도 화장실에 들어가 웃옷을 벗어던지고 돌아왔다.
양현 형의 등에도 ‘총기휴대 극렬분자’라고 적혀 있었지만, 형은 후배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주저주저하는 눈치였다. 내가 대신 양현 형의 웃옷을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통풍구 밖으로 던져 버렸다. 양현 형도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우선 한 대라도 덜 맞으니까. 그러나 며칠 뒤 영창 안이 발칵 뒤집혔다. 화장실 밖에 ‘총기휴대 극렬분자’라고 적힌 옷들이 널려 있는 것을 발견한 헌병들이 옷 주인을 색출한답시고 종일 기합을 주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바로 옆 5소대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집아, 상집아!”
큰형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큰형은 5월 17일 자정에 예비 검속되는 바람에 우리가 5.18 기간 내내 큰형의 종적을 모르고 있었는데 영창 안에서 만난 것이다. 헌병들이 큰형이 동생을 찾는다니까 아마 잠깐 서로 인사라도 하라고 배려해 준 모양이었다. 큰형과 나는 5소대와 6소대 철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벽을 사이에 두고 목소리만으로 통방을 했다.
나는 큰형에게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야 했다. 형수님과 형수 동생분이 함께 잡혀 왔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영창 안마당에 여자들이 끌려와 무릎을 꿇었다. 형수님과 형수 동생분의 모습도 보였다. 취조를 받으러 온 것이다. 온 식구들이 몽땅 잡혀온 셈이다. 이 모양을 본 큰형의 마음이 오죽하랴 싶어 내 마음은 바작바작 타들어갔다. 헌병 녀석들은 남 속도 모르고 “형제는 용감하였다”며 비아냥거렸다.
며칠 지났을까? 아침 기상 시간인 6시가 되기 전이다. 갑자기 쿵쿵 콘크리트 벽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헌병들이 몰려들더니 바로 옆 5소대로 들어가 고함을 질렀다. “엎드렷! 고개 숙엿!” 그들은 곤봉으로 포로들을 두들겨 팼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누군가가 들것에 실려 나갔다. 알고 보니 김영철 형이 화장실 모서리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살을 시도했다.
영철 형은 앞이마가 함몰되어 피가 낭자한 상태로 통합병원에 실려 갔다. 간첩임을 시인하라는 고문을 못이겨 차라리 죽기로 작심한 것이다. 상원 형의 죽음과 영철 형의 자살기도로 나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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