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기대가 너무 컸나? 별로다.
@[설국열차]기대가 너무 컸나? 별로다.
  • 김영주
  • 승인 2013.08.01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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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감독의 영화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플란더즈의 개]이다. 그 코믹함이 소박해서 참 좋았다. [괴물]은 그 괴물 때문에 재미있었지만 엄청 재미있지는 않았고, [마더]는 김혜자의 연기가 대단했지만 원빈의 동네바보 역할이 너무 어색했으며, [살인의 추억]은 좋은 영화이지만 대중재미가 약해서 200만 명쯤 모일 법한데 5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사람들이 많이 궁금했을까?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난 낮추어보지도 않지만 높게 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에 깔린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에 왠지 먹물의 똥폼이 서린 시니컬한 위악이 느껴져서 떠름하다.



그러나 남다른 실력을 갖춘 점을 인정하기에, 이번에 무려 450억 원이라는 우리 영화역사에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인 작품인지라 상당한 기대를 하였다. 앞서서 할리우드에 진출한 김지운[라스트 스탠드]와 박찬욱[스토커]가 초라했기에, 그가 성공하길 바라는 맘도 끼어들었다. 기후온난화로 지구생태계의 교란을 치료한다며 지구를 차갑게 하려다가 온 지구촌이 눈보라와 얼음으로 뒤덮여버린 설국. 100여 칸의 열차가 자체 자급자족 설비를 갖춘 ‘노아의 방주’로 외로이 지구촌을 내달린다. 자크 로브의 프랑스 만화원작에서는 1001칸으로 구성된 열차가 영화에서는 100여 칸으로 줄어들었지만, 각 칸의 모습은 원작에 많이 기댔다. 단백질양갱 생산공장 · 육고기 냉동실 · 식물원 온실 · 터널 수족관과 스시바 · 수영장과 사우나실 · 나이트클럽 · 마약 매음굴 · 서랍 전자장비실 · 교주를 세뇌교육하는 어린이교실 · 신성한 영구동력 엔진실와 윌포드 교주. 그 무대장치들의 아이디어들이 이상야릇한 그로테스크를 보여주지만, 열차의 좁다란 칸을 바탕으로 삼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숨을 조이기도 한다. 그렇게 어언 17년. 꼬리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머리칸을 향하여 나아간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2238&videoId=41508

크리스 에번스 · 존 허트 · 에드 해리스 · 틸다 스윈턴 · · · 쟁쟁한 해외배우들이 출연한다는데, 과연 호흡이 잘 맞을까? 촬영 말고는 주요스텝도 외국인이다. 송강호의 항상 그렇고 그런 모습에 식상해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대하지 않았다. 역시나 그렇고 그랬다. 고아성은 그 사이에 많이 자랐지만 연기력은 평범했다. [판타스틱4]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에서 B급 영웅캐릭터로만 만났던 크리스 에번스가, 이 영화에선 반란군 리더로 강단지고 다부진 캐릭터로 나오는 게 낯설지만 제 몫을 제대로 감당해간다. 그 색다른 이미지에 놀랐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단연코 돋보이는 배우는 틸다 스윈턴이다. [나니아 연대기] ‘하얀 마녀’캐릭터에선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마녀의 모습과 참 어울렸으나 그러려니 했는데, 이 영화에선 기괴하게 뒤틀린 캐릭터를 소름 돋을 정도로 망가지며 그려낸다. 그녀의 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완전 변신이다. 그리고 어린이학교 장면에서 만삭의 여교사 캐릭터가 사뭇 섬뜩하다. 교육을 종교적 광기로 뒤덮는 내용도 그러하거니와 그 ‘순결한 광기’가 “평범한 일상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예리한 지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내가 북한체제를 섬뜩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우와 극좌는 둘 다 그 극단적 순결을 외치며 집단광기를 번뜩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종교나 극우 일베무리들 그리고 극좌 진보이념에 이런 모습이 보인다. )

몇 몇 볼만한 장면도 있고 독특한 아이디어도 있다. 커다란 U턴을 그리며 달리는 열차의 앞 쪽과 뒤 쪽이 마주보면서 서로 총격을 주고받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그런데 2000억 3000억 원을 넘나드는 제작비로 만들어내는 비주얼과 엄청난 장면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겐 그 정도의 영상이나 아이디어로는 감동이나 충격을 줄 순 없다. 스토리의 숙성과 감독의 내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조금 독특할 따름이지, 숙성도 내공도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 나쁘지 않은 정도이다. 대중재미만 찾는 사람이라면, “별로네! · 재미없다.”고 할 수도 있고, 자극적 화끈함을 찾는 사람이라면 “지루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 대중재미 B+, * 영화기술 : 세계적 B+ · 한국적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B+.

[살인의 추억]600만 명 · [괴물]1300만 명만 보자면, 그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다는 건 참으로 어렵고 어렵다. 그러나 그의 대중성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서 난 그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대중성만 노리는 작품을 두어 개 만들다가 작품성을 노리는 작품을 한 개 씩 끼워 넣는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싶다.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잡는 작품이 나타나는 방법. 아무튼 그의 작품은 대중성과 작품성이 둘 다 불안한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플란더스의 개]말고는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떠름하고 그 불만의 찌꺼기가 지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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