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태 시장, 공문서 위조 정말 몰랐나?
강운태 시장, 공문서 위조 정말 몰랐나?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3.07.25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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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조작, 누가 지시했는지가 수사의 핵심
상식적으로 6급공무원의 '실수' 이해불가
▲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수영대회 개막식 경기장인 컨퍼런스룸에서 2019 세계수영대회 개최지로 광주가 확정·발표되자 강운태 광주시장 등 유치단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 벌어진 공문서 위조 사건과 관련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책임 소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홍원 국무총리가 23일 정부서울청사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사안이 분명한 만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밝힌 이후 곧바로 진행되는 수사여서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와 관련 22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체부 노태강 체육국장은 이날 서울 와룡동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회유치위원회가 국무총리와 문체부 장관의 서명을 도용해 국제수영연맹(FINA)에 정부 보증서를 제출한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대회유치위 관계자들을 공문서 위조 혐의로 광주지검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노 국장은 “사인을 위조해서 새로운 문서를 작성했다”며 “이런 사례는 정부 수립 이후에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고 설명했다.

광주지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4쪽 분량의 공문을 보내 수사를 의뢰함에 따라 23일 이 사건을 형사1부(부장검사 김국일)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유치위원회 관계자 2명 소환

24일 오후에는 공문서 위조 사건과 관련 광주시 6급 공무원 한모(44 · 여)씨와 총괄기획부 소속 5급 공무원 이모씨 등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 관계자 2명을 불러 정부 보증서 위조 경위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한씨는 유치위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 소속으로 정부 보증서를 위조한 것으로 알려진 직원이며 다른 1명은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장, 총괄기획부 소속 5급 공무원이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는 2명의 공동위원장과 사무총장, 사무국장을 비롯해 총괄기획부, 대외지원부,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의사결정권을 갖는 공동위원장은 강운태 광주시장과 이기흥 대한수영연맹회장이 맡고 있다. 사무총장은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 김윤석 사무총장이, 사무국장은 안기석 광주시 체육U대회지원국장이, 총괄기획부장은 김준형 시 체육진흥과장이, 대회지원부는 이정윤 시 체육진흥과 직원이,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장은 배미경 U대회 조직위 마케팅․국제업무부 부장이 겸임하고 있다. 유치위 총 인원은 18명이다.

총괄기획부와 대회지원부는 시청 15층 체육U대회지원국에서,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은 U대회 조직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

유치신청서 제출은 유치위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 소관

유치위 사무국 기구표에 따르면 총괄기획부와 대회지원부는 안기석 사무국장의 지휘를,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은 김윤석 사무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다.

검찰에 소환된 한씨는 U대회 조직위 마케팅․국제업무부 소속으로 유치위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에 파견된 광주시 6급 공무원이다.

국무총리와 문광부 장관의 사인을 위조한 한씨는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 소속이다. 국제협력 및 마케팅팀은 배미경 팀장을 포함해 3명이다. 이 팀은 국제수영연맹(FINA)에 유치의향서와 신청서를 제출한 업무를 주로 맡았다.

한씨는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 육상 도시의 스포츠발전을 위하여 한국 정부가 1억달러를 투자하였던 전례처럼 동일한 방식의 지원을 할 것입니다’라는 구체적 지원 액수 등이 담긴 ‘위조된 국무총리 정부보증서’에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인을 스캔해 사용했다. 이 사인은 지난 2월 전달받은 정부 보증서에 기재된 것이었다.

윗선의 지시나 묵인은 없었나?

검찰은 일단 한씨를 상대로 사인을 위조한 경위, 배경을 조사할 방침이다. 특히, 한씨가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윗선의 지시나 묵인이 있었는지 등이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씨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순전히 개인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전제한 뒤 “유치위원회 사무총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워낙 급한 상황이어서 사무총장도 재정보증서는 보지 못하고 유치 당위성 등 주요 부분만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24일 U대회 조직위 사무실에 한씨의 직속 상관인 배미경 팀장은 없었다. U대회 조직위 관계자는 “어제(23일)부터 휴가”라고 말했다. 문제의 사안이 큰 이 시기에 휴가를 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 되질 않는다.

송영한 U대회 조직위 홍보마케팅본부장은 “배미경 부장이 유치위 팀장을 겸직하고 있을 뿐 U대회 조직위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유치위 김윤석 사무총장은 23일 이와 관련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지난 3월께 정부 보증 문서를 서한문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대회 유치 컨설팅업체의 건의를 6급 직원 한씨로부터 전해들었다”며 “당시 어떤 것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검토해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이어 “4월 2일 유치신청서 초안(PDF)을 국제수영연맹(FINA)에 제출한 사실은 알았지만 서한문 형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국무총리와 문광부 장관의 사인이 스캔 돼 위조된 것은 알지 못했다”며 “총리실에서 4월 22일 문서 위조를 발견할 때에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또 “당시 서울과 해외 출장 때문에 바빠서 문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한문으로 바뀌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유치신청서 초안은 결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시 관계 공무원들, “난 그런 것 몰라요”

유치위 안기석 사무국장은 24일 이와 관련 “전혀 보고받은 적도 없고, 기구표 상 그런 시스템도 아니다”고 말했다.

유치위 김준영 총괄기획부장도 이날 “인지도 못했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며 “총리실서 (공문서 위조사실이) 발각된 후 알았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한씨가 국제컨설팅사 TSE의 권고를 받아 정부 보증서를 서한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서명을 스캔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간본부터는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으로 점검했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은 국제컨설팅사 TSE의 추천과 계약체결 과정을 묻는 질문에 “FINA가 TSE를 추천했고, 김윤석 사무총장이 스위스에 가서 유치위원회의 이름으로 TSE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강운태 시장, 총리실서 공문서 위조사실 발각된 후 알아

강운태 광주시장도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4월 2일 유치신청서 초안을 세계수영연맹에 제출하면서 김황식 총리와 최광식 장관의 서명을 위조한 사실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이날 회견에서 강 시장은 “4월 22일 총리실서 (공문서 위조사실이) 발각된 후 김윤석 사무총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알았다”며 “당시 김 총장에게 질책과 함께 당장 원본대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이어 “이후 중간본부터는 정부 보증서 원문을 첨부했고, 정홍원 총리를 만나 사과도 했다”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또 “6급 공무원이 세계수영연맹(FINA) 담당자와 수시로 메일을 주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문제의 문서가 작성된 것으로 보고받았다”면서 “이 때도 유치위는 보증서를 편지 형식으로 바꿨다는 정도로 이해했지, 내용 자체가 가필된 것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강운태 시장은 24일 간부회의를 통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관련 사건의 검찰의 수사가 개시된 것으로 듣고 있다”라고 말하고,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와 같은 강 시장을 비롯해 유치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공문서 위조는 6급 공무원인 한씨의 실수고, 세계수영연맹에 보낸 유치신청서 초안은 유치위 관계자 어느 누구도 검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문서 위조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의 정리된 듯한 말들에 대해 시민사회는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시민사회, “믿지 못하겠다”

참여자치21은 21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공문서위조 사건에서도 그동안 강운태 시장이 보여 왔던 책임회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강운태 시장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말단 실무자의 실수로 몰아붙이고 본인 책임을 회피하여 왔다”며 “이번 사태의 중심은 강운태 시장 본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명확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광주경실련은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태가 국제 행사 유치를 위해 특정 공무원이 과욕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성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정을 진행했던 강운태 시장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협의회는 23일 기자회견에서 “강운태 시장은 공문서 위조로 실추된 광주시민의 명예에 대해 즉각 사죄하고 이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라”며 “6급 공무원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강운태 시장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지역 주류정치권은 정부의 정치적 배경과 정략적인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주류정치권, 정부지원 촉구 이구동성

민주당 광주시당은 21일 “대회 유치 활동 초기 광주시의 잘못이 지적되었고 직후 시정되었던 만큼 정부가 뒤늦게 문제를 확대시킨 것은 정부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나 다름 아니다”면서 “우리는, 정부에 2019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대해 과거 진행되었거나 앞으로 진행될 국제대회와 마찬가지로 차별없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광주시의회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 이미 정부와 유치위원회간에 양해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 개최지 결정을 몇 시간 앞둔 시점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실은 정부여당의 불순한 의도와 야당출신 단체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치적 탄압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시의회는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정부 차원의 차별 없는 행․재정적 지원 확보를 위해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시 5개구의회 의장단 협의회는 25일 “정부는 지난 4월 유치위원회에서 위조한 정부보증서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개최지 결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에서 언론을 통해 검찰 고발과 예산 지원 철회를 밝혔다”며 “이는 국익에 반하는 조치이고 정치적 배경과 정략적인 의도가 숨어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은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계수영대회가 광주에서 차질없이 준비되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합진보당, 강 시장의 지시, 묵인 여부 등 규명돼야

이와 달리 비주류정당인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은 21일 “대회 유치를 위한 무리한 과욕이 결국 공문서 위조라는 초유의 참사를 일으켰다”며 “이 같은 결과가 강운태 시장의 재선을 위한 치적 쌓기 과정에서 빚어진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이번 사건은 광주의 대외신인도, 행정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국제대회 유치에 부정적인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며 “사건의 원인과 강운태 시장의 지시, 묵인 여부 등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고 책임자는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시공무원노조는 24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강 시장이 ‘단순한 6급 공무원 실수’라고 밝힌데 대해 “문제가 생기니 (강운태 시장은)단순한 실무자의 책임이라고 한다. 모든 문서의 기안자는 실무자”라며 “광주광역시의 모든 정책의 책임은 실무자가 져야할 형편이다. 조직 내 믿음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정책최고결정권자인 강 시장의 책임 떠넘기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광주시의 일관된 주장처럼 6급 공무원 혼자만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윗선의 지시나 묵인은 없었는지를 제대로 밝히는 일은 이제 검찰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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