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둘의 고려중학교 영어교사 박신원(42). 20여년동안 교단에 몸담고 있다는 그는 이제 가르치는 것이 익숙해질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단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돌아오고, 겨울이 돌아오면 그는 배우기 위해 가방 하나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한국을 떠나 또 다른 세계로 향한다.
세계를 이웃처럼 드나들어 가이드 자격도 있지만
여권에 더 이상 입국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해외여행 경력은 화려하다. 10년 전부터 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비행기를 탔으니 말이다.
"처음엔 여행 자체가 좋아서 떠나기 시작했죠". 수도없이 유럽을 돌고 또 돌면서 그는 세계를 만나고 다른 민족들과 친구가 되어 돌아왔다. 우연찮게 영국에서 '가이드 자격증'도 취득했을 정도로 그는 세계 나라들을 이웃집처럼 드나들었다.
하지만 3년 전 그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베트남, 라오스, 방글라데시아 등 오지를 돌면서 그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여행을 하다가 화장실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화장실이 없어요" 그래서 지나가던 한 사람을 붙잡고 화장실을 물었던 그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천지가 화장실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던 것이다.
문명 속에서 발견하기 힘든 것 오지에서 찾아
그 때 그는 문명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우리는 옛날에는 이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문명이라는 것에 익숙해져서 문명이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 싹튼 거죠. 하지만 그건 집착이예요" 그는 '문명이 발달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는 '집착이냐 아니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집착이 없을수록 행복지수도 높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멧돼지 두 마리를 봤다면 분명 두 마리를 다 잡는 것이 상식이예요" 하지만 그가 만난 오지 사람들은 달랐다. "멧돼지 한 마리만 잡아요. 그날은 그것만 먹으면 충분하거든요" 오지 사람들은 내일을 위한 저축이 없단다. 나머지 한 마리는 또다른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그들 세계에서의 '상식'이다. 여기서 그는 문명의 차이가 의식의 차이까지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음이 부자인 그들을 만날 떨림 오늘도 설렌다
이후 그는 오지 여행만을 고집한다. 유럽 각국에서 화려하고 멋진 문화를 즐겼던 그였지만, 문명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오지에서 배우기 위해서다.
"음식이 맞지 않아도 김치와 고추장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일지라도, 깨끗한 침대가 아닌 땅바닥이 그의 잠자리가 될지라도 "물질적 풍요로움보다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는 오지의 이곳 저곳을 찾는다.
선진국에서는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저 사람이 혹시?'라는 의심부터 생기지만 후진국에서 받는 친절은 '사람 향기' 나는 모습이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가르치는 위치로 되돌아오는 박교사. 그는 유럽 여행을 다닐 때보다 학생들에게 할 말이 더 많아졌다. 진짜 소중한 것은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명에 물들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음을 그는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가도 가도 새로운 것들을 배워서 돌아온다는 그는 두 명의 동료교사와 함께 오는 26일 또 배움을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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