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침대에 누워서
병실 침대에 누워서
  • 문틈/시인
  • 승인 2013.06.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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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증세가 근 한 달을 가더니 급기야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몸이 부실하다보니 해마다 한두 번은 홍역을 치르듯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어버렸다. 병실에 누워서 생각하노니 건강을 잃으면 세상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이 난다.
어릴 적 족두리를 쓰고 시집오던 신부가 가져온 혼수 베갯모에는 흔히 한쪽에는 목숨 수(壽)자, 다른 쪽에는 복 복(福)자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건강히 오래 살기를 바라는 새댁의 마음을 이제야 절절히 알 것만 같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시난고난하며 지내온 터라 자주 병원에 가서 몸을 추슬러 가까스로 살아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병원에 오면 집에서보다 되레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천상 병원체질인가보다. 환자복을 입고 양 팔뚝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비닐관을 매달고 누워 있는 환자들은 모두들 인생이라고 하는 야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실려 온 삶의 상이용사들이다.
나는 병실 침상에 누워 있는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증세가 가벼운 셈이다. 하긴 먼저 갔던 모 병원에서는 응급실 담당 의사 말이 “선생님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았는데 입원하지 않고 외래로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급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다섯 시간 만에 퇴짜맞고 동네 병원에 사정해서 입원 환자 신분이 되었다. 병원마다 환자가 넘치다 보니 정말 환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입원해 있는 곳은 9인실이다. 그렇다보니 완전히 병실이 시끄러운 저자 같다.

어떤 이는 뭐 즐겨보는 연속 드라마가 있다며 밤 열한시가 다 되도록 텔레비전 리모콘을 쥐고 있다. 어떤 이는 꼭두새벽부터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해대는 통에 왕짜증을 유발한다. 병원(호스피털)이라는 말 속에는 호텔처럼 쉰다는 뜻도 있는데 이건 아니올시다다.
그건 그렇고 병원에 입원해서 보니 세상에는 온통 병든 환자들뿐인 듯싶다. 길거리에 멀쩡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누구나 병원에 들어와 환자복을 입으면 금방 환자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아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환자이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뒤바뀐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얗고 얼굴에 주름이 패인 70대가 넘은 사람들이다. 80이 가까운 분들도 있다. 건너편 어르신은 가만 보니 딸들이 여럿인지 요일별로 수발을 교대하러 온다. 늙은 아내가 늙은 남편을 옆에 지켜서 밤새워 간호를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도 해로한 노처에게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린다. 자기 아픈 것이 다 아내 책임이라도 된다는 듯이.

병실 침대마다 각 환자의 아픈 사연이 같이 앓고 있다. 대체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다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병원마다 넘쳐나는 이 앓는 중생들을 어찌할꼬. 국가도, 사회도, 가족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세상에는 넘쳐나는 것이 환자다. 병원 창밖으로 보면 세상이 멀쩡하게 굴러가는 것 같아도 세상은 깊게 병들어 있다.
사람들아, 병원에 와서 환자가 한번 되어보라. 사는 것이 그렇게 죽기살기로 대드는 것이 혹 아닐지도 모르니. ‘앓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아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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