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에 세상이 있다면
죽은 다음에 세상이 있다면
  • 문틈 시인
  • 승인 2013.06.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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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도 삶이 있는가? 이 질문만큼 인간에게 큰 질문도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인생관이 달라지고, 사상, 종교가 달라진다.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어쩌면 인류가 지상에 태어난 때부터 이 질문에 시달려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이 질문을 놓고 벌여온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이는 죽은 다음 다시 만날 것을 눈물로 다짐한다. 병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도한다.

세상에는 사는 일이 고달프고 슬픈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죽은 다음에 다른 세상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 억울하게 살았던 사람들, 짓눌리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 보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또 다른 세상이 있어야만 공평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겪은 수많은 아픔들을 달랠 수가 있을까.

그러므로 인간이 겪는 이런 삶의 고달픔 때문에라도 죽은 다음에 세상이 있어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줄 영원한 행복의 나라가 있어야만 하고, 그 나라에 가서 죽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 누구나 복락을 누리고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런 뜻에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나, 마야족, 뭐 우리나라 옛 사람들도 저 세상을 그리며 죽은 이들에게 그런 소망을 담아 보냈던 것이다. 장례식이란 것이 딴은 그런 인식을 기본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는 별도로 한 평생 죽은 다음에 또다시 살아가는 저 세상이란 것이 정말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족속이 지상에 태어난 이후 그 누구도 죽은 다음의 세상을 갔다 온 이가 없으니 과연 죽고 난 다음 복락을 누리는 저 세상이 실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세상이 있었으면 하고 지금껏 바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나 하나도 그 대열의 어디쯤에 서 있다.

몇 달 전 아버지와 사별한 나는 영정을 보며 이따금 기도하듯 혼잣말을 한다. “아버지, 제가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저 세상에 가면 아버지를 만나 잘 해드릴게요. 그동안 세상고락 다 잊고 편히 지내세요.”

그런 인사를 하다가는 때로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든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그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실 터인데 내가 만일 죽어 하늘나라로 간다면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아버지 말고도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쩌면 수천만 명, 수 억명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보다 더 많을 부모님들을 뵙고 문안인사 하느라 천국에서는 좀체 쉴 틈이 없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뿐인가. 나 또한 아버지를 찾아뵙듯 내 자식 또한 나를 만나러 오고, 그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 또한 만나러 오고…. 잘 해드리려는 대열은 끝이 없을 것만 같다.

하늘나라가 있는지 정말 우리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가 숨 쉬고 걸어 다니고 웃고 떠들고 먹고 자는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잘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공동체와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임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죽은 다음에 세상이 있든 없든 그것은 말 그대로 죽은 다음의, 즉 이 세상 일이 아닌, 저 세상 일이다.

저 세상 일을 왜 여기 살면서 생각해야 하나? 파스칼 말대로 죽은 다음에 세상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 있다고 믿고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면 죽어서 부모님들을 기쁜 낯으로 뵐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보다 더 좋은 삶의 방법이 있겠는가. 지금 여기서 오늘 이 순간 열심히 사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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