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좋다!
@[위대한 개츠비]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좋다!
  • 김영주
  • 승인 2013.05.2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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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에 얽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70시절 영화이고, 또 하나는 최근에 읽은 소설이다. 70시절 영화는 영화에 안목을 갖지 못한데다가 유명한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이고 포스터도 품격있어서 보았는데, 여주인공 미아 패로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게 내내 찝찝하게 걸려서 영화 안으로 도통 빨려들지 못했다. 미아 패로가 주는 불편한 기억만 남아 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미국 현대소설의 백미”라는 찬사로 버젓이 앉아있는 소설책이 눈에 들어와, 원작소설을 읽으면 혹시나 미아 패로라는 장애물을 벗어나서 그 ‘백미의 맛’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로 펼쳐보았다. 처음부터 장황하고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그 놈의 서양소설에 잘못 걸려들었구나!” 낭패감에 몰려서 200쪽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이번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위대한 개츠비]를 마주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리가 미국영화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배우로 꼽힌다. 내가 그를 맨 처음 만난 건 [타이타닉]이다. 눈부시게 깔끔하고 단아했다. 솜털을 이제 마악 벗어나서 새파랗게 푸릇푸릇한 청춘이 피어오르고, 단정한 이마 위로 반듯하게 빗어 넘긴 갈색금발이 흘러내리며 초롱초롱한 푸른 눈동자에 서린 총명이 반짝거렸다. 케이트 윈슬렛도 처음이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비해 농염한 미색이 익어가는 연상의 여인에게 낚인 듯해 보일 정도로 그의 푸르고 파릇파릇한 청춘에, 남자인 내가 흠뻑 반해 버렸다. 그런데 [에비에이터]에서부터이든가? 그 눈부시게 파릇한 청춘의 매력이 거친 황토먼지바람에 바짝 말라가는 듯하면서 잭 니콜슨처럼 똥고집으로 뭉쳐 고약해 보이기 시작했다. 꽃미남이 나이 들면서 얼굴이나 몸집이 굵어지며 기괴해져 가는 걸 종종 보는데, 기괴해 보이기까진 아니지만 그 눈부신 매력이 메말라 스러져갔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최근 [인셉션]에선 싫은 맘까지 들어섰다. 비슷한 이미지인 맷 데이먼이 훨씬 샤프하고 깔끔해 보였다. 이래저래 이번 [위대한 개츠비]를 주저했다. 주변에 평판도 그리 높지 않다. 그런데 시나리오와 스토리 연출은 알 수 없지만, 예고편이 보여주는 영상과 의상 무대 미술 음악 소품이 범상치 않았다. [물랑루즈]에서 보았던 감독의 연출력도 괜찮았는데 . . . .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9310&videoId=40544

좋았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다시 만나는 첫 장면의 설레이는 모습이 너무나 상투적이었다는 것, 깊고 멋진 대사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그리고 작가는 그 사랑이 간절하고 애절하다지만 내 눈엔 그 사랑이 그리 애절해 보이지 않은 것 말고는, 좋았다. 스토리의 연출력도 좋았고, 영상과 의상 무대 미술 음악 소품은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성스럽고 그 미감이 깊다. 게다가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이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개츠비의 삶과 사랑에 음미할 만한 생각꺼리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 시대상을 음미할 만한 교양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은, 이 영화를 어느 선남선녀의 사랑이야기로만 이해할 게다. 더구나 요즘 자극적인 연출력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100년 전쯤의 신파조 사랑과 갈등에 별로 감흥하지 못할 게다. 특히 20대 30대 관객은 그 사랑의 순진무구함도 그 시대상에 놓인 의미도 잘 모르기 때문에, 화려한 영상 말고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지루하게 여길 법하다. 그래서 아마 영화평판도 별로 좋지 않는 것 같다. * 대중재미 : 20대나 30대 B0 · 40대나 50대 B+(내 재미 A0, 영상재미 A++) * 영화기술 A++.

빼어난 영상재미와 훌륭한 의상 무대 미술 음악 소품이 주는 재미말고도, 무엇보다도 반가운 건 레오에게서 깔끔하고 단아한 이미지가 다시 살아나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타이타닉]에서처럼 새파란 청춘은 이미 담장너머로 멀리 가버렸지만, 그 동안 보여주었던 똥고집에 고약한 인상이 아니라 그 깔끔하고 단아한 이미지가 중년으로 이어지는 핸썸한 멋쟁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해골처럼 깡마른 미아 패로와는 전혀 달리 청순한 부드러움으로 우아한 여주인공 캐리 멀리건의 데이지 캐릭터도 좋았고, 데이지 남편인 타락한 망나니 조엘 에저튼도 참 그럴 싸 했고, 특히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가 핵심조연 이웃집 남자로 영화를 잘 이끌어 주었다. 오랜만에 말초적 감각에만 기댄 자극적인 스토리나 어마어마하거나 요란뻑쩍한 화면이 아니라, 잘 차려진 영화무대에 주연과 조연들이 아주 잘 어울려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잘 짜인 스토리와 화려한 영상감각으로 그려내어 보여주었다. 시대적 감흥과 문학적 풍치가 잘 어울리는 숙성깊은 영화였다. 강력추천까진 아니더라도 널리 권유하고 싶다. * 작가의 관점과 내공 : 건강한 보수파 – 소설B+ · 영화A0.

스콧 피츠제럴드가 말하려는 바를 그의 소설이 아니라 바즈 루어만의 영화로서야 겨우 이해되었다는 게, 아쉽다. 그의 소설이 너무 재미없어서 읽어나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문화적 갭이기도 하겠고, 번역의 한계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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