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하-2)예리한 풍자와 해학 담아 양반계층 비판
김삿갓 (하-2)예리한 풍자와 해학 담아 양반계층 비판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3.05.15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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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반항아로 봉건체제 비꼬며 자유 누려

▲화순동복의 김삿갓 공원
김삿갓은 가련에 대한 애정적 표현의 시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농민에 대한 연민, 속세를 초탈한 인생관,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청빈한 삶에 대한 자부심이 해학적, 긍정적, 은유적, 희화적(戱畵的)으로 담겨져 있는 시도 있다.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오애청산도수래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김병연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畫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그 파격적인 양상을 한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
四十村中五十食 사십촌중오십식 망할 놈의 마을에서는 쉰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우칠십사 인간으로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

▲김병연 첫 묘지알림을의 비석
이 시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신성함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양식 파괴 등에서 이러한 파격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시들은 예리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다. 특히 격식에 구애되지 않은 기발한 착상으로 한자의 뜻과 음을 파격적으로 사용해 한자의 음이 같으나 뜻이 다른 글자를 써서 대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시를 통해 대상에 대한 조소와 멸시를 자아내는 뛰어난 재치를 보였으며, 한자로서 우리말을 표시하는 파격시도 지었다. 그 밖에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묘사하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는 시들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김병연 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복수성은 당시 사회의 몰락한 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와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과 야유 그리고 기지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방랑생활 자체가 불평과 반항의 한 표현이었다. 그 이전의 많은 반항아들 역시 이 방법을 취했으니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일생을 방랑객으로 살았고, 봉건체제에 반항아 허균(許筠)도 역시 그런 생활을 했었다.

기이하고 광적(狂的)인 행동도 반항적 태도의 한 단면이었다. 신석우는 해장집(海藏集)에서는 김병연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거장에 들어가되 어떤 때는 수십 편을 짓고 나오고 어떤 때는 한 편도 안 짓고 나오니 그 광태가 이와 같더라…, 과거장 밖의 술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사랑하나 그 광태를 무서워하여 술을 모조리 먹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그의 기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큰소리로 웃어주기도 하고 풍자와 재담으로 비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이것은 일반 대중이 그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일부 양반들도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한편 즐겨 쓴 삿갓 역시 변형된 투쟁 무기였으니 보기 싫은 당시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김삿갓은 조부를 탄핵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죄인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지배계급에 대한 시대적인 반항아의 표상이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80여수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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