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를 주목하라7-김영태의 시간의 그림자
이 작가를 주목하라7-김영태의 시간의 그림자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3.05.09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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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을 재현한 듯한 충격 느껴
"시공간적 원근법 초월해 인위적 공간에 이미지 담아내"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알려진 것처럼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을 꾼 무릉도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왼쪽 하단의 현실세계로부터 오른쪽 상단의 꿈 속 세계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이끌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립박물관에 있는 몽유도원도는 가짜이고 진짜는 일본의 천리대학 부속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떤 경로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었다. 가상의 그림이긴 하지만 안견의 '벽안도'라는 게 등장한다. 2009년에 만들어진 ‘인사동 스캔들’에서 김래원과 엄정화의 대결 구도는 전설 속의 그림을 둘러싼 사기극을 통해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시간과 공간을 붙잡아 한 곳에 모아놓은 듯

다시 현실로 돌아와 롯데갤러리에서 김영태의 작품을 만난다. ‘시간의 그림자’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을 붙잡아 둔 채 어느 한 곳에 쌓아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위해 중첩이라는 기법을 이용했다. 하나의 필름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를 번갈아가며 찍어 타자의 이미지와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간격이 있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몽유도원도가 생각났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전시작품의 타자는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이다. 그런데 그 타자는 스스로 주체성을 갖고 있다. 안견이 오늘에 있었다면 입석대와 서석대를 보고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를 생각해본다면 김영태의 작품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태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 인사를 나눈 적이 없지만 전시장에서 자주 만났을 법 한데 사실 무심코 넘어간 대목이 있다. 그와 처음 통성명을 나눈 것은 2010년 뜨거운 여름, 사실 숨 쉬기도 힘들던 8월에 중국 북경의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센터였다.
그는 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 이곳에서 6개월간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그의 작품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몇 개월 전부터 광주에서 가끔 얼굴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갤러리에서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다. 아무런 그에 관한 정보나 선입견 없이 본 작품들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바로 떠올렸기 때문이다.

골짜기에 자란 어린 시절 환영을 되살려

그는 곡성의 석곡면 출신이다. 곡성은 산이 많고 골짜기가 많은 곳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산과 하늘, 자연을 벗 삼아 지내온 경험이 그의 작품의 밑거름을 형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1991년 전남대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우연하게 집에 있던 펜탁스 카메라를 손에 들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부 이면서도 사진부 친구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많이 다녔다.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림의 구도나 시각 훈련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작품이 되어 갔다. 가장 깊은 인상은 담양 소쇄원 인근의 다리 밑을 흐르는 물결을 찍은 것이다. 작은 돌이나 큰 돌에 부딪혀 거품을 내는 모습이나 줄지어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마치 숨결을 닮았다고 했다.

1994년 복학한 이듬해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가운데 흑백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박일구씨가 운영하던 ‘끼공방’에 들어가 3개월여 동안 바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사진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에 그 역시 현실로 돌아왔다.
대학 3,4학년 무렵 페인팅 작업에 몰두했고 졸업 작품도 덧씌우기를 하는 기법을 이용한 추상작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사진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느낀 감동이 그에게 남아있어 다시 소쇄원을 찾았다.
그리고 광주천을 지나가다 오염되고 파괴된 모습을 보고 사진매체를 이용하여 물결과 물살, 복개천 내부의 암흑, 오염의 냄새, 개울에 나뒹구는 허접한 것들과 식물 등의 미약하지만 끈질긴 숨소리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미술로 재현했다.

‘광주의 숨결’로 신세계미술상 수상

이들 작품을 2001년 광주신세계에서 주최한 제4회 신세계미술제 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신세계미술제는 1년 전부터 1,2차에 걸쳐 출품작에 대한 포트폴리오 심사 및 워크숍을 개최한 뒤 150명 응모자 중 11명을 선정, 이들이 본전시에 참여하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는 당시에 환경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던 시기여서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광주천의 물결에서 마치 핏줄, 호흡, 허파와 같은 ‘광주의 숨결’을 느꼈다 한다. 밤에 지나가며 보았던 광주천은 낮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천변 주변의 네온사인 불빛에 반사된 광주천은 도시 문명의 적나라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장화를 신고 삼각대를 들고 냄새나는 광주천을 거닐며 장시간 촬영을 통해 물결 위로 코팅된 듯한 잃어버린 도시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가하면 양동 복개상가는 낮에도 어둠에 갇힌 곳이었다. 복개상가의 어둠을 지나 밖으로 흘러나가는 광주천은 햇빛에 강렬하게 부딪혔다. 315m의 어둠을 지나 숨을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다시 숨 쉬는 공간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 작품은 2002년 광주신세계에서 첫 개인전으로 선보였다. 자연의 순환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써 문명의 헛됨과 자연의 위대함을 드러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무작정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차를 몰고 차창 밖으로 비치는 영상을 따라 자신도 흘러가는 것이었다. 하루는 저녁 늦게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따라가다가 바닷가 백사장에 이르렀다. 고창을 지난 어느 바닷가였다.
밤바다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번개도 쳤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 담으면 괜찮은 작품을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서 노출이 나오지 않아 촬영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4년여 동안 이 바다를 찾았다.

광주 도청앞과 천안문 광장 아픔 포용

오랜 시간 찾았던 이곳에서 나온 두 번째 작품 시리즈가 ‘그림자 땅’이다. 2010년 두 번째 개인전이 광주신세계에서 열렸다. ‘그림자 땅’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으로는 완전하게 감지하지 못 하는 원형(原形)의 세상을 반영하고 예시하는 유한한 시공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림자의 사전적 의미는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또는 물에 비쳐 나타나는 물체의 모습을 말한다. 그는 물질적인 현상으로서의 그림자를 말하기보다는 원형의 땅을 반사하는 의미로 그림자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번 롯데갤러리에서 선보인 세 번째 개인전인 ‘시간의 그림자’로 연결되고 있다. 그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잡아둘 수 있는 개념이다. 그는 사진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여과 없이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타자들간의 상관성을 보여주고 그들이 스스로 상대의 ‘그림자’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익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1과장은 “김영태의 작품은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이 그리고 그에 따른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공존하고 있다”면서 “그의 의지에 따라 대상이 시공간적 원근법을 초월하여 하나의 인위적인 공간 안에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보는 대상은 본질의 세계가 아니라 신이 만들어놓은 형상이 아니던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자연의 재현이라고 말하는 미메시스(mimesis)라는 사실을 그의 작품에서 다시 일깨워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는 광주의 5.18이 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5.18은 광주가 겪은 운명이며 사명이기도 하다. 그는 북경 레지던시 기간 동안 천안문 광장을 보며 광주의 5.18과 같은 상처와 아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두 공간에 대한 공감을 갖고 아픔을 포용할 수 있는 작업을 하겠다고 밝힌다. 아픔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자유의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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