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자취를 찾아서(중)
김삿갓의 자취를 찾아서(중)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3.04.24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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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동복의 김삿갓 문학관 공원

'한국의 3대 구라'로 흔히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방배추(본명 방동규), 황석영(소설가)을 이야기 한다. 얼마 전 MBC '황금어장'에 출연해 문화재청장을 지닌 유홍준 교수가 언급한 이야기여서 공식화됐다고 한다.
'구라'란 '이야기'를 말하는 은어이다. 따라서 이들 3명이 한국에서 이야기를 가장 꾸며내는 ‘이야기 꾼’ 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도 이 시대에 살았다면 최고의 재담꾼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난고는 1807년에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회동면에서 태어났고, 1년 연상인 장수 황씨와 결혼했다. 약관의 나이에 강원도 영월 도호부 과거에서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牛天:가산 군수 정씨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이라는 시제(詩題)를 받아 글을 썼다.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충신의 죽음을 동정하고 찬양하는 글을, 반면에 불충 죄인은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여도 마땅하다고 탄핵하는 격한 내용의 시(詩)를 지어 장원급제하였다.

그가 6살 때 1811년 평안도 선천(宣川) 부사(府使) 겸 방어사(防禦使)인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된다. 어찌 보면 멸족(滅族)은 엄청 무서운 형벌로 한 가족이나 종족을 멸하여 없애거나, 또는 한 가족이나 종족이 망하여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는 권문세도의 장동 김씨의 최대 수모였다. 이때 노복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 땅으로 피신하여 겨우 목숨을 연명하다, 1815년에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병하와 병연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이미 아버지 김안근은 화병으로 사망하였다,
1816년 병연의 어머니는 고향에서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영월로 옮겨와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갔다. 당시 폐족은 폐족원국(廢族怨國)이라 하여,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 김삿갓이 운명했다는 거처
이런 집안의 내력을 모르고 병연이 과거에 응시 장원을 하였는데,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역적이라고 자기가 맹렬하게 조롱한 김익순이 자기 조부임을 모친을 통해 가족 내력 설명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친조부를 욕되게 하면서까지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고 했다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와 통한으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22세부터 삿갓 쓰고 죽장(竹杖) 짚은 채 35여 년 동안 팔도강산 방방곡곡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외톨이 생활을 한 풍류객 시인 김삿갓.
1831년 가을 모친과 처자식을 떠나 첫 방랑생활을 시작한 곳이 바로 금강산이었다, 그는 각지의 서당을 돌며 주로 머리가 덜 찬 양반네나 훈장들을 조롱하며 보내다, 4년 뒤 귀향해 1년 남짓 묵으면서 둘째 아들 익균을 낳고 안정적 생활을 한 듯하다,

또 다시 고향을 떠나 서울, 충청도, 경상도 등을 돌아보고 안동 도산서원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 동안 훈장도 지냈다. 다시 충청도와 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간 훈장으로도 있었다.
충청도 계룡산 밑에서 자신을 찾아 온 아들 익균을 만나 집으로 가자는 말에 그를 재워놓고 도망하는 등 아들과 세 번 만났지만 모두 도피하고 말았다,
김병연의 방랑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불평객과 반항아의 색채를 띠고 있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그의 불평과 반항은 계급적 몰락에서 오는 개인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폭넓은 사회 경험을 함에 따라 세계관과 사회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선 왕조에 대해 은근히 반대의 감정을 표시한 것은 물론 봉건 질서

제도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저주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증오하게 되었다.
기세등등하고 서슬이 시퍼런 양반 귀족들의 비인간적인 부패와 죄악을 대담하게 풍자적으로 폭로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면서 다양한 즉흥시(卽興詩), 민중시(民衆詩), 변형시(變形詩)를 만들어낸 ‘민중시인(民衆詩人) 김립(金笠).
미국의 월트 휫트먼(Walt Whitman)과 일본의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 석천탁목)와 더불어 세계 3대 시 혁명가로 꼽히는 유명한 시인 난고 김병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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