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자취를 찾아서(상)
김삿갓의 자취를 찾아서(상)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3.04.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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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적벽의 가슴 아린 사연 애닲아
라디오 인기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 기억 되새겨

50, 60대 이상 사람들 중에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어렸을 땐 TV도 책도 별로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동네에 라디오 한 대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마루치 아라치'나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같은 라디오 드라마나, 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먹던' 옛이야기가 최고였던 시절이다. 그래서 눈보다 귀를 더 밝게 만들던 그 시절의 정서적 놀이 문화였다.

1964년 5월 18일부터 KBS라디오에서 낮 12시 55분부터 5분간 매일 방송했던 인기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 이었다. 내용이야 북한동포의 단편적이나마 내용을 역사 속의 풍류시인 김삿갓을 등장시켜 가상으로나마 드라마 끝부분에는 반드시 4행의 풍자시를 통하여 북한사회를 이야기 하는 형식으로 마무리 되는 최 장수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1807년(순조7년) 경기도 양주 출생,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 1863년 3월 29일 57세의 일기로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동복면(同福面) 구암리 창원 정씨 댁과 사랑채에서 생을 마감한 시선(時仙) 김병연(金炳淵)은 무등산 자락과 인연을 맺었다.

의분과 정의감이 넘치고 인도주의적인 평민 사상으로 무장한 채 해학과 재치의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천재 시인인 풍운아 김삿갓, 조선의 뿌리 깊은 반상, 적서, 남녀의 세 가지 차별에 더하여 지역 차별로 고민한 진정한 이상주의자며, 아나키스트이고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홍경래란 사람이 없었다면 그가 있었을까.

세도정치세력의 표본 이였던 안동 김 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 씨라고 불렀는데, 그는 장동 김 씨 후손이라, 그런 의문을 던져본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이라는 1950대 후반 명국환의 노래 ‘방랑 시인 김삿갓’의 주인공을 찾아가보자.

광주 시민의 식수원인 동북호에 있는 화순적벽은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 60호로 지정되었다. 화순의 동북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노루목 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크고 작은 절벽들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감아 돌면서 거대한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호남 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화순적벽은, 중국 양쯔강변의 소상적벽을 연상케 하고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나게 하는 절경으로, 임억령, 김인후 등 많은 시인묵객들이 화순적벽을 찾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림 이유다.

조선 중종(1506~1544)때의 선비인 신재 최 산우가 1519년 기묘사화로 동북에서 유배 중, 이곳의 절경을 보고 소동파의 '적벽부' 에서 이름을 따서 '적벽' 이라 부른 이후, 많은 풍류시인들이 이곳에 들러 그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화순적벽에는 가슴 아린 사연이 전해온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조광조(1482~1519)는,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25일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화순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한을 달랬다고 한다.

노루목 적벽 상류 3km지점에 위치한 물염적벽은 병풍처럼 깍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의 풍경이 아름답지만 비단결같은 강줄기와 주위 풍광을 감싸안은 듯 포근하고 고색창연한 물염정이 압권이다. 물염정(勿染亭)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과 명종(재위 1545∼1567)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하였고,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勿染亭)이라 하였다.

'물염(勿染)' 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정자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자 내부에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이식(李栻)·권필(權韠)·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 남긴 시문(詩文) 등 20개가 넘는 현판이 걸려 있다.

화순에서 생을 마치기 전에 물염정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 하는데 그런 연유로 정자 근처에 김삿갓의 동상과 7폭의 시비(詩碑)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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