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를 주목하라6. 박수만-인간군상의 핑크 속살을 탐하다
이 작가를 주목하라6. 박수만-인간군상의 핑크 속살을 탐하다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3.04.1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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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사회의 알몸을 드러낸 ‘쑈’
사람 냄새 나는 세상 그 온기를 찾아
▲ 노랑머리 162X130cm oil on canvas 2013.

그는 만화에 나오는 아저씨처럼 생겼다. 사람마다 그 ‘아저씨’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주인공은 날카롭게 생겼지만 그는 푸근한 모습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말수가 적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월산동 2층 작업실. 주변에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점집과 후줄근한 방석집들이 닭전머리 입구를 따라 양 옆으로 약간 즐비하다. 그가 이곳으로 작업실을 옮긴 것은 3년 전이다. 임대료가 싼 곳을 찾다보니 양림동, 서방시장과 서동을 거쳐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핑크빛을 따라 자리를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이면 비좁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핑크빛이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기에 충분할만큼 아랫도리를 적신다. 마치 그의 화면에서 언제나처럼 그로테스크(grotesque)한 핑크빛이 관객에게 말을 건넨 것처럼 말이다.

그로테스크한 인간 세상 표현

▲ 박수만 작가
그는 현실세계의 왜곡된 모습에 분노한다. 진실은 사라지고 기괴한 환상만이 남아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 것일까? 이 때문에 16세기의 이탈리아 궁정화가였던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냄새가 약간 나는 듯하면서도 그만의 인간사 밖에 있는 것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문학평론가 박슬기는 ‘인간 밖에 있는 것’들을 표현한 그로테스크가 지니는 ‘악마성’은 낭만주의 시대에는 인간 내부의 것이었다가 이후에 인간이 처한 세계 자체의 속성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선한’ 주체와 대립되는 ‘악’을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수만의 작품에서는 선함과 악함이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자본주의적 현실세계가 등장한다. 그리고 휴머니즘에 천착하는 그의 인간세계가 덧칠되고 있다. 그래서 왜곡되고 변형된 사회를 과장된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정치는 쑈라는 것을 넘어 인생은 쑈라고 말한다. 마침 이번 전시의 주제도 ‘쑈’라고 붙였다. 광주롯데갤러리 창작지원공모 선정작가전으로 열리는 작품전에 등장하는 작품들도 온통 핑크빛 그로테스크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순수를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 길이 사회와 세상을 밝히는 핑크빛이며 옳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민족미술이 정치적인 성향을 띤다면 자신은 형상미술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질 찾기에 몰두한다고 했다. 인간중심의 미술, 인간이 주체가 되는 미술에 관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때 에곤 쉴레를 접하고 충격 받아

어린 시절에는 만화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전남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왜 그림을 배웠어요? 흔한 질문을 했다. 저는 평범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별로 말주변이 없고 표현력이 부족해요. 그림이 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빠르게 동화되지 않지만 한번 정을 주면 막걸리를 연이어 따라 붓는 소박함을 갖고 있다. 주변 환경도 그렇지만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사람 냄새 나고 온기가 느껴지는 인상 때문에 다가오는 느낌이 좋다.

그는 3학년 때 작가론 보고서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가 우연하게 흑백도판의 에곤 쉴레(Egon Schiele) 작품을 접했다. 우울하고 그토록 그로테스크하면서 인간의 심연 바닥까지 추적해낸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그 후 그는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등의 표현주의 계열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세상을 읽는 방법, 인체를 재해석하는 방법, 사회의 제도나 전쟁이 인체에 가하는 폭력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하기 시작했다.

미술평론가 강수미의 말마따나 1990년대 들어 젊은 작가들이 취하는 모티브는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처럼 고급 패션 상품, 대중스타, 인테리어 소품, 만화 캐릭터, 낙서, 동물 사체, 담배꽁초 등 과거 미술에서 주변부이거나 일상 또는 하위문화라고 하여 배제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신의 일상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는 세부이며 환경이다. 또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면서 가장 욕망하는 것들을 예술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질료라고 하겠다.

▲ 소통227X182cm oil on canvas 2013.
인간을 주제로 한 형상미술 강조

대학 시절(1984~1989) 그는 거의 에곤 쉴레에 집착한 듯하다. 작가는 이를 부인하지만 우리들 자신의 내재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의 출세에 대한 욕망, 안락함에 대한 희구, 명성에 대한 갈증, 성적인 쾌락, 관음증, 롤리타 콤플렉스와 같은 것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에곤 쉴레처럼 감추려 했는지 몰라도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중성과 관객의 이중성을 들추어내고 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은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다. 인간을 사유하되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의 작품은 크게 1980년대는 학창시절의 민중기, 1990년대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생명기, 2000년대는 순수를 찾는 인간군상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980년대는 이미 말한 것처럼 에곤 쉴레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고독’, ‘청소부’, ‘불안’, ‘아버지’와 같은 작품들은 굵은 선과 거친 붓칠, 빨강과 검정의 대비를 통해 암울했던 정치적 변동기에 대한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198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다가온 충격이 90년대에 반영된다.

1990년대는 80년대 작품보다 붓칠이 다소 부드러워지면서 과거의 굵은 선은 줄어들고 색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이 선택되었고 민화풍과 부적이나 풍수지리와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기호적인 상징성을 표현했다. 때로는 관객에게 몽환적 모습으로 마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하는듯한 형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2000년대는 초반기에 민화적인 모습이 보이다가 핑크 계열의 인체가 등장하면서 후반부에서는 더욱 진한 색채로 덧칠이 이루어진다. 녹색, 군청, 검정 계열의 바탕과 대비되는 핑크는 대비를 이루며 인간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방황은 순수를 찾는 미인도(迷·人·道)

그는 2003년 신세계미술제 대상을 받은 작품들에는 흰색과 핑크가 혼재해서 나타나고 2006년 광주롯데화랑 창작지원전으로 열린 ‘미인도(迷·人·道)’ 전에서는 보다 선명한 색채의 핑크가 등장한다. 그는 여전히 방황(迷)하는 현대인(人)의 길(道)찾기를 통해 잃어버린 순수성을 찾아가려 한다.

최근작인 ‘노랑머리’에서는 월산동의 방석집에서 본 세태를 통해 왜곡된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있고 ‘소통’에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간들이 서로 얽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는 아직 핑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러한 알몸의 인간군상이 오히려 순수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광주 롯데갤러리이다.

▲ 복숭아를 좋아해 73X61cm oil on canva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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