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지슬] 4.3의 원혼을 추도합니다.
수정@[지슬] 4.3의 원혼을 추도합니다.
  • 김영주
  • 승인 2013.04.0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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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감자를 제주도 사투리로 ‘지슬’이라고 한단다. 제주도에서 감자에 얽힌 어떤 사연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 사연은 1948년에 벌어진 ‘제주도의 4.3사건’이다. 내가 4.3사건을 처음으로 안 건, 한겨레신문이 연재한 현기영의 소설[바람 타는 섬]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에 그런 처참한 일이 서려 있는지 까맣게 몰랐다.



1947년 3월 1일, 서울에서 좌익과 우익은 따로 3.1절 기념식을 갖는다. 우익은 미군정청 자문기관인 ‘민주의원’의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좌익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주최로 남산에서 각각 기념행사를 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좌익과 우익 군중 사이에 유혈충돌이 일어난다. 이를 진압하러 나선 경찰의 발포로 결국 2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부상했다. 좌익과 우익의 3.1절 기념식 분리개최로 충돌은 서울뿐만 아니라 제주와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 날 하루 모두 16명이 숨지고 22명이 크게 다쳤다. 특히 제주에서는 경찰이 좌익집회를 해산시키다가 발포하여 6명이 숨졌다. 미군정 당국은 이 뒤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도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구금하고 고문을 자행하였으며, 이러한 와중에 1948년이 되면서 5·10선거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4월 3일 새벽 2시에 350명의 무장대가 경찰지서 24개에서 12개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그리고 5월 10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가 되었다. 게다가 그해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북쪽에 또 다른 정권이 세워지게 된다. 이제 제주도의 4.3사건은 단순한 지역문제를 뛰어 넘어서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바다에서 5km를 넘어선 지역을 폭도지역으로 몰아세우고 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강경진압작전을 펼친다.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 그렇게 해서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사건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에 무려 ‘3만 명’(제주도민의 10%)이나 죽어나갔다.

올해로 65년이 되었다. “4.3사건이 개인의 숙제나 지역의 숙제가 아닌 ‘시대의 숙제’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어서 감사를 드린다. 원혼들이 평안하게 눈 감을 수 있기를 바라고, 가슴에 남겨진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함께 관심과 노력을 부탁한다.” 오멸 감독이 브졸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을 받으며 남긴 말이다. 국가와 종교는 때론 우리의 삶에 울타리나 기둥이 되어서 기대고 살아가는 의지처이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의 삶을 옭죄고 폭행하며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국가와 종교라는 게 워낙 거대하고 튼튼한 조직인지라,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들추어내거나 저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4.3사건의 피해자들은 50여 년 동안 숨죽이며 응어리져 왔다. 90시절부터 조금씩 이야기되다가 노무현정부가 공식사과하기에 이르렀지만, 대중에게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런데 4.3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지난해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부터 찬사 속에 화제작으로 떠오르면서 넷팩상 · 한국영화감독조합상 · CGV무비꼴라주상 · 시민평론가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더 각광을 받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는 2012년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하였다. 마침내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로 꼽히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었고, 프랑스 브졸영화제 장편영화부문 대상인 황금수레바퀴상을 받았다.

미국 군정시절에 벌어진 국가의 잘못을 고발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낸 노고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겠지만, 그 예술적 미감도 높기에 이러한 큰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사 지낼 때 빨간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신위神位 · 신묘神廟 · 음복飮福 · 소지燒紙라는 네 개의 큰 타이틀을 기둥으로 삼아 “죽은 사람을 위로, 살아남은 사람을 치료!”하려는 뜻을 담아 이끌어가는 흑백영화이다. 흑백으로 그려낸 무채색이 그 어느 영화보다도 어울린다. 흑과 백이 좌익과 우익이 맞부딪히며 격동하는 1948년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군인의 만행이라는 惡과 민간인의 순박함이라는 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니,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그윽하고 깊게 잡아내서 짙은 여운을 드리우며 예술적으로 승화한 컷이나 장면이 많아서 매우 그렇다. * 기술적 감각 A+.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8396&videoId=40453&t__nil_main_video=thumbnail

이렇게 제주도민에게 맺힌 설운 원한을 씻김굿해주고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준 영화이긴 하지만, 나에겐 그 절박한 처연함이 잘 다가오지 않았다. 왜 그럴까? 광주 오월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30여 년의 세월에서 보여주는 우리 세상의 모습에 절망하고 지쳐버린 걸까? 내 자신이 이 경박하고 말초적인 감각으로 넘쳐나는 세태에 묻혀서 슬픔의 감각이 무뎌져 버린 걸까?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영화 자체에 스토리가 약해 보여서 드라마틱한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사회성 짙은 고발다큐 쪽보다는 순덕이와 만철이 사랑에 더 초점을 두고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더 강하게 살려냈으면 관객의 몰입을 더 불러오지 않았을까? 나는 영화 안으로 빨려들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는 관객에 지나지 않았다. 슬픈 감동이 아니라 슬픈 씁쓸함이었다.

상당히 훌륭한 역량과 질긴 근성을 가진 감독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4.3사건을 영상으로 보고하면서 억울한 영혼께 씻김굿으로 위로하고 추념하는 추도식 같았다. [오월愛]처럼 아예 다큐 쪽으로만 연출하든지, 아니면 [26년]처럼 아예 픽션 드라마로 연출하든지, 연출각도를 확실하게 잡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좋은 작품이지만 안타깝다. * 대중 슬픔 B+,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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