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72 백락천이 비파행을 지은 구강(九江)
중국이야기 72 백락천이 비파행을 지은 구강(九江)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3.03.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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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구 박사

양자강으로 아홉 강이 흐르는 구강시(九江市)가 있다. 이곳에는 이백, 백락천, 소동파, 모택동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자기의 성(性)을 파는 행위로 많이 쓰이지만 ‘윤락(淪落)’이란 말에는 적잖은 시정(詩情)이 담겨 있다. 그 말 자체는 원래 삶이 여의치 않거나 힘에 겨워 세상을 떠도는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이 단어는 무엇보다 백거이로 더 잘 알려진 백락천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 그는 당나라의 천재 시인으로 강서성으로 좌천돼 사마라는 한직을 맡고 있던 무렵에 쓴 비파행(琵琶行)이라는 그의 작품 중 백미(白眉)에 해당한다.
백거이는 1,200년 전에 20세기 한국 시인들이 경험한 정신적 각성을 충분히 겪은 리얼리스트였다. 또 저항시인이었고,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 시를 통해 세상이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백거이는 평이한 수사를 선택함으로써 그의 시가 민중 속에 쉽게 전파되도록 했다.
백거이는 어느 가을 자신을 찾아왔다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려다 강가에서 듣게 되는 비파 소리, 그 주인공을 찾아 음악을 듣고 여인의 살아온 행적을 알게 된다. 수도 장안(長安)에서 잘나가던 기생, 그리고 나이가 들어 퇴기(退妓) 취급당하다가 먼 지방의 장사치 아내로 자리 잡게 된 사연이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젊었을 적의 즐거웠던 추억들과 지금 실의에 빠진 초췌(憔悴)한 모습으로 남게 된 이력을 말하는 그녀에게서 깊은 감정을 받았다. 자신 또한 덧없는 정쟁에 말려 지방의 한직으로 밀려난 신세였다. 사실 마흔 셋 나이의 백거이에게 관직의 높고 낮음보다는 인생의 무상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민초들의 힘겨운 삶에 늘 귀를 기울였던 백거이는 그 순간의 공명을 이렇게 읊는다. ‘하늘 끝에서 유랑하는 다 같은 신세니, 만나면 그만이지 옛 사람 아니면 어떠랴(同是天涯淪落人, 相逢何必曾相識)’ 절박한 삶의 환경이 만들어 놓는 하늘 끝, 그곳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상태가 윤락이다. 당초 성 매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어로 쓰였던 것이다. 그가 글을 지었다는 비파정이 있다.

비파행(琵琶行)
潯陽江頭夜送客 심양강가에서 밤에 나그네를 배웅할 때
楓葉荻花秋瑟瑟 단풍잎 갈대꽃 위로 가을바람 쓸쓸하네
主人下馬客在船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 안에 있어
舉酒欲飲無管絃 술잔 들어 이별주를 마시려 해도 풍악이 없네
醉不成歡慘將別 취한 마음 기쁘지 않고 이별의 슬픔만 처절한데
別時茫茫江浸月 헤어질 때 망망한 강에는 달빛만 어려 흐르네
忽聞水上琵琶聲 홀연히 강물 위에 비파 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 주인은 돌아올 것 잊고 나그네는 떠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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