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당사에서 공천은 때로는 벌거벗은 힘의 대결마당이었다. 줄을 잘 잡거나 돈 많고 조직 든든한 사람은, 부패범죄로 국민적 지탄을 받거나 수시로 여당과 야당을 넘나드는 행동을 했더라도, 공천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젊은 정치신인은 참신하고 능력 있더라도 기성정치인의 기득권에 밀려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국가비전이나 정책과 무관한 계파싸움이 난무했고 심지어 ‘공천장사’라고 의심할 만한 사례들도 없지 않았다.
민주당의 공천개혁은 우선 공천심사를 강화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공정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방안, 도덕성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3단계 심사방안, 공정한 전략공천 방안 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제안은 2011년 7월 민주당 개혁특위가 만들었던 안 그대로이다.
첫째, 공천심사위원회를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로 구성하기 위해 먼저 ‘공심위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기를 제안한다. 당 지도부는 사회적 신망이 높은 개혁지도자급 인사들을 선정위원으로 위촉해 그 분들로 하여금 공심위원을 선정하게 한다. 백낙청 선생 같으신 어른들이 선정위원이 되시면 좋겠다. 선정위원들은 당 안팎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당 안팎 동수의 공심위원을 선정한다. 외부 공심위원은 공신력 있는 관련 단체의 추천을 받아 선정하도록 한다. 예컨대, 여성위원은 여성단체연합의, 변호사는 민변의 추천을 받는 식이다. 이상과 같은 선정위원회를 통하면 공심위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둘째, 공심위의 공천심사를 3단계로 나누어 엄격하고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1차 도덕성 심사, 2차 정체성 심사, 3차 후보 적합도 심사로 나누어, 1차 심사에 합격한 공천신청자만이 2차 심사를 받게 하고 2차 심사에 합격한 자만이 3차 심사를 받게 한다. 도덕성과 정체성을 모두 갖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당선가능성 등을 따지는 후보 적합도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자나 민주당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자는 아예 발붙일 수 없게 된다.
지난해 총선 때에는 도덕성, 정체성, 당선가능성 등을 한데 묶어 두루뭉술하게 심사했다. 그런 제도 아래에서는 도덕성이나 정체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요소(당선가능성, 조직력, 계파성, 돈(?))에서 우세를 보이는 인물이 공천될 길이 열린다.
며칠 전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방안은 도덕성과 정체성을 한데 묶어 1단계 심사를 하게 돼 있다. 과거보다는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방안이다.
셋째, 지역구의원 공천자의 30%까지는 지도부가 재량에 따라 전략 공천을 하게 돼 있는데, 이 전략 공천의 지역과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에도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즉,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정활동평가, 전략공천 할 후보자의 선정기준과 도덕성, 정체성 등의 평가기준 따위를 미리 정밀하게 만들고 전략 공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천개혁은 민주당 개혁의 눈알이다. 공천개혁 없이 민주당은 앞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