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윤상원기념사업회가 출범한다
사단법인 윤상원기념사업회가 출범한다
  • 김상집 5.18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 승인 2013.03.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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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윤상원기념사업회가 출범한다

1980년 5월 26일 오후 8시경 전남도청 3층 회의실, “대학생들은 YWCA로 모여라!”는 전남대 스쿨버스의 방송을 듣고 혹은 도청 주변의 대자보와 시내곳곳에 뿌려진 투사회보를 보고 몰려든 70여 명의 대학생들과 그리고 전남대 인쇄기로 대량 홍보물을 찍기 위해 전남대로 투입될 투사회보팀은 총기를 지급받기 위해 윤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외신기자회견을 마친 윤상원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일동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앉아. 일어섯! 동작 봐라. 눈깔 구르는 소리가 난다. 뒤로 돌아. 우향우. 좌향좌. 뒤로 돌아. 열중 쉬어.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제2의 생명인 총기를 지급받으러 간다. 총기 사용법은 숙지했나?”
“예.” “대답이 시원챦다. 총기 사용법은 숙지했낫?” “옛!”
“방금 외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왔다. 외신기자들이 우리한테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여주더라. 며칠 전에는 두 손을 들고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이며 계엄군들과 싸워 일주일만 버티면 미국은 더 이상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고 민주일정에 따라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가 들어설 거라고 했었다. 날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줄어들더니 오늘은 삼일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고 손가락 세 개만 펴 보이더라.
여러분은 이제 제2의 생명인 총기를 지급받고 시민군이 된다. 우리 시민군이 공수들의 무차별 살육 만행과 민주정부를 염원하는 시민군의 투쟁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또한 어제 대학생들 100여명에 이어 오늘은 여러분들과 향토예비군들이 동네마다 재무장하고 있으니 이제 감히 계엄군이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 시민군이 삼일만 더 버티게 되면 미국은 더 이상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고 전두환을 물러나게 한 다음, 우리나라는 민주일정에 따라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여러분들이 혼신을 다해 싸워주기를 바란다. 알겠나?” “예” “소리가 작다. 알겠낫?” “옛!”
대학생들과 투사회보팀은 우렁차게 대답을 하고 투사의 노래를 부르며 순서대로 총기를 지급받았다. 대학생들은 도청에 남고 나는 투사회보팀을 이끌고 YWCA로 돌아왔다. 서명원 선생님을 통해 전남대 문선공과 연락을 하여 내일 아침 9시까지 투사회보팀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였다. 그리고 광주시장실로 전화를 하여 산수동 학동 백운동 농성동 광천동 동운동 중흥동 풍향동 등 계엄군과 자주 교전하는 외곽지역 동의 지역방어를 위해 향토예비군을 동원해야 하니 동별로 연락을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시장은 바로 승낙하였다.
각 동별로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숙직 담당자에게 내일 아침 10시까지 동예비군을 동원하면 도청에서 대학생 2명이 가서 총기를 지급하고 지역방어를 할 거라고 통보하였다. 그 날 새벽 윤상원은 전사했다.
518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 대변인을 기리는 ‘윤상원상’이 1990년 전남사회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제정되어 4회에 걸쳐 수여되었다. 5·18유족회의 '5·18 시민상'과 전남사회문제연구소의 '윤상원상'이 5·18기념재단으로 통합된 뒤에도 3회에 걸쳐 ‘윤상원상’이 수여되다가 2000년에야 ‘광주인권상’이 태어났으나 ‘윤상원상’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민주회복국민연합전남지부 총무로, 들불야학 강학으로, 녹두서점 운영자로, 전남대 총학 기획실위원으로, 전국민주노동자연합 중앙위원으로, 518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5월항쟁을 이끌었던 열혈남아 윤상원을 기리는 사단법인 윤상원기념사업회가 3월 23일 오후 3시 광주YMCA 울안실에서 발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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