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미생]의 윤태호, 무등산의 자랑스런 아들
■만화[미생]의 윤태호, 무등산의 자랑스런 아들
  • 김영주
  • 승인 2013.03.21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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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쯤 해오던 큰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영화[레 미제라블]에서 찝찝했던 궁금증을 풀어내고 싶어서 지난 주말에 소설[레 미제라블] 다섯 권을 독파하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1860년대의 구닥다리 소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장광설이 너무 너무 길다. 쟝발짱을 감싸준 신부가 얼마나 거룩하고 숭고한 인품인가를 보여주는 첫 출발부터, 쟝발짱 · 팡틴 · 쟈베르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그 정형화되고 도식적인 설명이 우리 삶의 리얼러티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빅토르 위고, 참 유식하구나!”하는 생각 말고는 너무나 지루했다. “이 따위가 무슨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야? 송기숙의 [자라골의 비가]가 열배 백배 훌륭하구만!” 신경질이 났다. 1권 200쪽 쯤 억지로 읽어가다가 도저히 더 읽을 수가 없어서 덮어버렸다. 작년에 [돈키호테]도 그랬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서양의 유명한 고전소설 10여 권을 읽어보았지만,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장면 말고는 뭉클한 감동커녕 소소한 재미마저도 맛 본 적이 없다. 다짐했다. “앞으로 서양의 유명한 고전작품을 책으로는 절대 만나지 않을 꺼야!” 그리곤 윤태호의 만화[未生]을 만났다. 밑바닥 인생의 리얼러티가 생생하게 밀려들었다. 소설[레 미제라블]과는 정반대였다. 


 

1년 전쯤에 그의 만화[이끼]를 이야기했다. “놀라운 만화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만화를 보았지만, 이토록 독특한 만화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 내용과 스토리 전개방식도 독특하지만, 그림체와 장면 배열방식 · 등장인물의 개성 그리고 그 몸짓과 표정들 · 실감나는 대사와 미묘한 감정이 배인 침묵 그리고 그 틈새들 사이로 흐르는 스산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솜씨와 스타일이 사뭇 독특하다.” 만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바쁜 일이 많아서 ‘만화세상’까지 섭렵하지는 못하고 중고생들에게 물어서 1년에 서너 편쯤 본다. [이끼]의 작가 윤태호가 [미생]이라는 작품으로 ‘다음의 만화세상’에서 인기 1위를 롱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는 2012대한민국콘텐츠 만화부문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올해도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만화상’을 받았단다. 당장 [미생]을 만났다. 너무 재밌어서 도중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최근 111회까지 한꺼번에 모두 다 보고야 말았다.( 360회까지 할 예정이라니, 아직도 250회가 남았다. )

어려서 바둑에 소질을 보여 바둑의 세계에 묻혀 살다가 바둑 프로기사를 도중에 포기하고, 어느 대기업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다가 계약직 직원이 된 ‘장그래’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엮어가는 샐러리맨 이야기이다. 세상살이 경험도 별로 없고 무슨 특별한 재주도 없이 ‘아직 시다바리를 벗어나지 놈이라는 未生’이지만, 바둑판에서 묵힌 10여 년의 경험에 기대어서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펼쳐 보여준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회조직들도 낱낱이 다르다. 그 체질도 다르고 그 발자취도 달라서 그 스타일이나 냄새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이 세상의 만물과 만사가 경우 경우마다 다르다. 이 만화가 보여주는 회사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다르다. 크기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고, 리더와 구성원들의 스타일과 냄새도 다르다. 그러나 개인기업체라는 점에서 같고, 지구촌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고 ‘더티 플레이’가 넘쳐흐르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함께 놀고 있다는 점에서 같고, “모두 다 이기적이다.”는 대명제 아래에서 그 수많은 이기심들을 나름대로 요리하고 줄타기하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뺑뺑이 인생’이라는 점에서 같다. 내 직장과 다른 듯하지만 같은 점도 많아서, 이 만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마치 내가 만난 그 사건인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만화를 “이 시대 직장인들의 모습을 그린 웹툰으로 ‘만화가 아닌 인생교과서 · 직장생활의 교본 · 샐러리맨 만화의 진리'라는 자자한 소문을 타고 직장인들 사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찬양한다.

< 만화[미생]보기>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miseng

내가 60시절에 만난 만화나 영화는 그저 재미요 환상이었다. 70시절에는 만화와 영화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그 재미나 환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80시절엔 그 재미나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고, 90시절엔 때때로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하였다. 그게 만화에서 이현세 · 허영무 · 이두호 · 김수정 · 김동화였다. 그리곤 일본의 [닥터 슬럼프] [드래곤 볼] [시티헌터]를 만났고, 미야자끼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을 벅찬 감동으로 만났다. 그는 단박에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엔 그 미야자끼 하야오의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을 윤태호의 만화에서 만났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에서 만난 감동은 정서적인 감동이라면, 윤태호의 작품에서 만난 감동은 현실생활의 리얼러티로 오는 감동이다. 맛도 다르고 촉감도 다르다.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고, 그 어떤 논픽션이나 생활다큐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그림실력도 빼어나고 스토리 구성도 탄탄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장면을 잡아내는 앵글 그리고 장면들을 배치하는 다양한 기법 그리고 그 표정과 제스추어나 대사들 사이 사이에 미묘하게 흐르는 심리적 갈등과 변화마저 그 생생한 실감이 사무치게 저려온다. 컷 컷마다 장면 장면마다, 현실생활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통찰하지 않으면 그려낼 수 없고 엮어갈 수 없는 편린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밑바닥을 뻑뻑 기면서 새겨낸 ‘마이너러티’의 맵고 시린 인생 그 자체이다. 질투심마저 솟구칠 정도로 놀랍다. 만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획기적이고 가히 혁명적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만화가 아닌 인생교과서 · 직장생활의 교본 · 샐러리맨 만화의 진리’이라고들 하겠나!

이 생생한 리얼러티를 나 혼자만 감흥한다는 게 아까워서, 만나는 사람마다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다. 누구보다도 비바람 몰아치고 서릿발까지 치대는 냉혹한 세상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파란 청춘들에게 꼭 권장하고 싶다. ‘눈물 젖은 빵’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청춘들은 그 재미가 A0일지 모르지만, 냉혹한 세상에서 5년 10년쯤 고달프게 밑바닥을 기어본 사람에겐 그 재미가 A++이겠고, 20년을 넘어서서 이젠 한 가락 잡고서 처세에 이마가 벗겨지도록 노회한 사람에겐 아직 풋내가 남아있고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아쭈, 제법인데!” 재미있어 하며 A+는 될 것이다. * 작품기술 A++, * 작가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A+. 이렇게 재미 · 기술 · 내공이 모두 A+을 넘는 작품은 만나기 참 어렵다. 틈나는 대로 그의 나머지 작품들을 모두 찾아 읽어야겠다. [내부자들] [야후] [당신은 거기 있었다] [로망스] [싸이렌] [연씨별곡] [혼자 자는 남편] [수상한 아이들] [협객전] · · · . 이런 작품들로 199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 2002년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 · 2007년 대한민국만화대상 · 2008년 부천만화상 일반만화상을 받으며, 이미 자자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 뱀발 : 그는 1969년에 출생하여 우리 무등산 자락에서 자라서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너무 가난해서 대학엘 못 갔다. ) 우리 광주 출신이 이토록 훌륭한 예술가가 되었다는 게 사뭇 기쁘고 가슴 뿌뜻하다.

* <네이버캐스트> 만화가 윤태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contents_id=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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