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구의 중국이야기 69 중국 3대 누각 등왕각(滕王閣)
강원구의 중국이야기 69 중국 3대 누각 등왕각(滕王閣)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장
  • 승인 2013.03.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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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구 박사

남창으로 흐르는 감강(赣江)은 양자강의 지류이다. 감강이란 장강과 공강이 합쳐져 감강이 된다. 감강의 옆에 등왕각은 무한의 황학루, 악양의 악양루와 더불어 중국 3대 누각 가운데 첫 번째로 칭한다.
다른 누각처럼 당, 송, 원, 명, 청대의 누각이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다. 등왕각은 653년 당태종의 동생인 등왕(滕王) 이원영이 홍주(洪州. 남창) 도독으로 있으면서 세운 누각이다. 그 후 몇 차례의 흥성과 쇠퇴를 거쳐 명대(明代) 경봉년간(景奉年間: AD 1450-1456년) 지방행정 도어사(都御使)인 한옹(韓雍)이 개건(改建)을 하여 그 규모는 3층 높이 27m, 너비 14m로 되었다.

현재 새로 개건, 증축한 등왕각은 지하실을 포함하여 9층이며 높이 57.5m, 부지면적 47000m²이다. 등왕각에 모택동이 왔다갔으며, 바로 이 등왕각시를 써 놓은 것을 전시하고 있다. 등왕각은 역사적으로 봉건사대부들이 영접과 환송하는 잔치를 배풀어 손님을 초대하는 곳이었다.
명대(明代)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도 잔치상을 벌려 각 대신들에서 공로를 표창하였으며 문인들은 시(詩)와 글을 지었으며 야간에는 등불을 관상하였다. 675년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이 27세에 ‘등왕각서’라는 글을 지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명심보감에 ‘시래풍송등왕각(時來風送滕王閣)’이란 글이 나온다. 이 내용은 ‘사람이 때를 만나면 왕발처럼 등왕각에 가서 하루아침에 훌륭한 글을 남겨 유명해진다’는 내용이다. 명심보감을 배웠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감동을 받는다.

등왕각 서

藤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임강저) 등왕이 세운 높은 누각은 지금도 장강 기슭에 솟아있으나
佩玉鳴鸞罷歌舞(패옥명란파가무) 패옥과 명란의 노래하고 추던 춤은 그치고 말았네
畵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 아침엔 남포 구름이 채색된 기둥을 날아갔을 것이고
珠簾暮捲西山雨(주렴모권서산우) 저녁엔 붉은 발 말아 올리고 서산에 비를 바라보았으리라
閑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 한가로운 구름과 연못의 그림자는 유유히 변함없는데
物換星移度幾秋(물환성이도기추) 사물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몇 번의 가을을 지나갔던고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저 누각에 계시던 왕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류) 난간밖에는 기나긴 강물만이 부질없이 절로 흘러갈 뿐이네

등왕각은 이전부터 남창(南昌)에 위치하였으며 강서성의 중요한 관광지역 및 경관 지역으로 되었다. 현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6층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상점에서 판매하는 성씨의 책과 성씨마다 자기로 만든 컵이 유명하다.

이곳에서 아래에 흐르는 감강을 바라볼 수 있어 옛날 왕발의 시에 젖기도 한다. 강서성을 가리키는 감(贛)은 바로 여기에서 따온 글자로, 이 강은 중국 제일의 호수 파양호로 들어가 다시 양자강으로 흐른다.
신도시인 남창시청의 바로 옆에서 분수쇼가 벌여진다. 남창의 야경과 분수 쇼는 중국에서도 으뜸이라 할 정도로 유명하다. 바로 건너편은 등왕각이 있는 지역을 구도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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