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소리>창간 12주년, 창간 멤버에 듣는다
<시민의소리>창간 12주년, 창간 멤버에 듣는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13.02.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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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 소설가, 양근서 경기도의원, 이덕재 5.18 아카이브 설립 추진위원회 연구위원

지난 2001년 2월 21일, '지역언론 위기의 근원은 저널리즘의 위기로 그 결과 독자의 외면을 초래했다'는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의 요구에 <시민의소리>가 창간 1호를 발행했다. 그리고 지난 12년간 '시민과 함께 만드는 바른소리 바른언론 시민의소리'가 지역이슈를 만들어가며 대안언론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지금의 <시민의소리>가 있도록 초창기를 이끌었던 창간 멤버들의 이야기를 담아 창간정신을 다시 더듬어본다.

문순태 소설가
   
▲문순태 소설가
▲<시민의소리>에서 어떠한 활동사항을 해오셨는가.

2001년 창간 당시 발행인을 맡았다. 오래전부터 전남일보에서 함께 일했던 손정연, 민형배 등 후배들이 광주에서 이슈 중심의 새로운 대안신문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적인 구상을 했다. 그 때 나는 전남일보에서 편집국장을 거쳐 주필로 있다가 광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기존의 언론들이 시민들의 알권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차라, 후배들의 뜻에 따라 의기투합하여 적극 참여하게 됐다.

▲<시민의소리>를 이끌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들은 무엇이 있는가.

힘들었던 점은 열악한 재정문제였다. 발행인의 입장에서 안정적인 경영을 책임질 수 없었던 점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시민의 소리 후원자’로 참여 미리 구독료를 보내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시민의 소리’에 ‘미디어 비평’이라는 코너에서 한 주간 동안 지역 언론의 편집 내용을 비판했기 때문에 기존 언론으로부터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다.

모 일간지 사장의 골프 사건을 다루어 결국은 발행인인 나와 손정연 편집인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날카롭고 성역 없는 ‘미디어비평’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시민의 소리’야 말로 신문의 신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시민의소리>가 기존의 지역 언론과 차별화 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로운 시민저널리즘을 실천하자는 편집방침에 따라 시민이 직접 제작에 동참하는 신문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다짐이었다. 그래서 전남대학교 강당을 빌려 시민저널리즘 교육을 실시했는데 많은 시민들이 큰 관심을 갖고 교육에 참여해주었고, 교육받은 시민기자들에 의해 숨은 기사들을 발굴해 낼 수 있었다.

그 때 우리 생각은 시민기자를 양성하여 인권, 폭력의 사각지대나 기존 언론이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을 보도하고 싶어 했다. 시민기자들의 편집 참여는 매너리즘에 빠진 지역 언론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이슈 신문 <시민의소리>에게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창간 12주년을 맞는 ‘시민의 소리’에 바라고 싶은 것이 많다. 먼저 창간 당시에 생각했던 이슈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큰 이슈보다는 우리들의 현실적 삶 속에서 기존 언론들이 미처 발견하기 못했거나 은폐되고 외면당한 삶의 장애들을 찾아내고 이슈화하여 해결해보자는 것이었다. 지금도 사각지대에서 가려진 문제들이 많다.

‘시민의 소리’ 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풍요의 그늘 속에 가려진, 작지만 서민들의 행복한 삶을 저해하는 문제들을 찾아내어 이슈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는 일회성 보도보다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문화의 시대고 인문학의 시대인 만큼 문화에 더 비중을 주었으면 한다. 창간 12주년을 맞은 ‘시민의 소리’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양근서 경기도의원
▲<시민의소리>에서 어떠한 활동사항을 해오셨는가.

창간 준비부터 2003년까지 함께 했으니 한 4년은 되는 것 같다. 당시에는 참 많은 기자들이 스스로 새로운 언론에 목말라했다. 방송이나 신문사에 있던 선후배기자들끼리 무슨 비밀결사처럼 인터넷 기반의 대안언론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뉴스통’이란 이름이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자사 매체에 싣지 못한 비판적인 기사나 언론사 내부의 부끄러운 속살 등을 내보내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몰래 기사 쓰고 언론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못가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민형배 광산구청장을 비롯해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기자들이 모여 ‘시민의 소리’를 제대로 담는 대안언론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고 당시 광주 교차로 김창훈 사장이 힘을 보태 창간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정말이지 연필에 침 묻혀 가며 꾹꾹 눌러 쓰는 심정으로 열심히 취재하고 다녔다.

▲<시민의소리>를 이끌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들은 무엇이 있는지.

두 번의 법정소송에 휘말려 모두 승소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2년 민주당 광주광역시장 경선에서 이정일 서구청장이 공천됐다. 그런데 당내 경선과정을 들여다보니 중도 사퇴한 이모 변호사와 부정한 거래가 있었고, 여러 부정선거 정황이 포착돼 이를 특종보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신문과 종이신문을 번갈아가며 짧은 기간에 집중적이고 숨 가쁜 추적기사로 속보를 내보냈다. 결국 검찰의 수사가 시작돼 이 변호사는 알선수재혐의로 긴급 체포돼 구속됐다. 사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급기야는 민주당 중앙당이 추미애 의원을 단장으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고 최고위원회에서는 이정일 후보의 공천을 취소하고, 박광태 의원을 민주당 후보로 대체하게 됐다.

갑작스런 후보교체로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선거판은 크게 요동쳤다. 무엇보다 박 후보가 시장 감인지 검증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권노갑씨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을 취재 보도했는데 박 후보의 비위장을 거슬리게 한 모양이었다. 선거 중에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통상 선거에 이기면 선거 중 고소고발은 다 풀고 가기 마련이지만 그는 승자의 아량이 없었고, 저는 타협을 모르고 패기만 앞세웠었다. 그러다보니 재판은 결국 권노갑씨 등을 증인으로 법정에 불러 세우는 등 대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로 끝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정리될 무렵 시장 자리를 손에 쥐었다가 놓친 이정일씨를 만나 서로 서운한 소회를 나누었다. 그 때 그에게 서운한 마음을 담아 건넨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파출소 피하니 경찰서 만난 격이었다.

▲<시민의소리>가 기존의 지역언론과 차별화 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제도권 언론이 여간해서는 다루기 힘든 영역도 성역 없이 보도했기 때문에 창간부터 주목을 받았다. 또 ‘이슈신문’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이나 쟁점을 표피적으로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보도를 지속한 점도 신뢰받는 언론으로 뿌리내리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인터넷기반으로 실시간 속보경쟁에서도 앞섰고 주간지의 특성상 깊이 있는 심층 탐사보도 지면을 늘리고 파격적인 편집으로 시민들을 사로잡은 점도 기존 언론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민완기자 출신의 선배 언론인과 푸른 고등어처럼 파닥거리는 젊은 기자들이 조화를 참 잘 이뤘던 것 같다.

▲시민과 함께하는 이슈 신문 <시민의소리>에게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시대가 변해도 창간 정신이 녹슬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의 소리의 가장 큰 경쟁력은 맑고 건강한 언론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니 벌써 12년의 족적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120년으로 바라보고 다시 한걸음부터 시작하는 심정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시기 바란다. 많은 시민과 독자들이 일어나 함께 걸어갈 것이다. 시민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는 언론으로 번창하길 기원한다.

이덕재 5.18 아카이브 설립 추진위원회 연구위원
   
▲이덕재 5.18 아카이브 설립 추진위원회 연구위원
▲<시민의소리>에서 어떠한 활동사항을 해오셨는가.

창간준비를 시작했던 2001년부터 참여해서 창간호가 발행하고 2004년 10월까지 <시민의소리>에서 편집장 역할을 해왔다. 당시에 성역 없는 보도를 하기 위해 주력했다.

▲<시민의소리>를 이끌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들은 무엇이 있는가.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대안언론, 바른 언론의 길을 간다는데 모두 공감하고 서로 격려하며 열성을 다해 현장을 뛰어다니던 기자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창간호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광주 K병원 노조탄압의 얼굴, 박광태 전 시장과의 송사, 지면 언론비평을 둘러싸고 기존 신문사들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기억 등이 있다.

▲<시민의소리>가 기존의 지역 언론과 차별화 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호 그대로 시민의 소리를 담는다는 점이었다. 지역토호-정치, 행정, 경제, 법조 등-에 대해 성역 없이 치부를 파헤치고, 올곧게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이 기존의 지역 언론과 상당히 차별화 된 점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이슈 신문 <시민의소리>에게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지난 25일 취임식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제기돼야 할 지역이슈에 대한 심층, 기획기사가 좀 더 풍부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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