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언론 반란' 어떻게 볼 것인가
공무원 '언론 반란' 어떻게 볼 것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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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의 '언론 반란'이 시작됐다. 해방이후 50여년 관료제 역사에서 첫 대 역습이다. 특히 그동안 언론의 펜대에 휘둘려야 했던 하위직 공무원들이 앞장서고 있다.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중심으로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언론의 필봉에 맞서고 있다.

광주시 직협은 PD와 공무원간에 빚어진 '문예회관 폭행시비'와 관련 공식 대응에 나섰다. 시각은 '힘있는 언론의 힘없는 공무원죽이기'에 맞춰져 있다. 광주시 광산구에서는 사비로 봐야했던 신문의 눈치구독을 전면 거부했다. 이어 지방주재기자제도 폐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목포시청 공무원 700여명은 호남신문의 '보복성 기사'에 취재협조 및 구독거부운동으로 정면 대응했다.

광주 광산 목포 곳곳 언론과 맞짱 직장협의회 중심 사상 초유의 일

이같은 현상은 전국적이다. 앞으로도 더욱 폭발적인 형태로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오산시에서는 직협과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대규모 거리집회까지 열어가며 언론개혁운동을 벌였다. 결국 추경에 편성된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데 성공(?)했다. 광양시에서는 7월부터 광산구에서 벌어졌던 '신문 눈치구독 거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판이다.

이밖에 다른 직협에서는 기자실문제와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연감강매문제 등을 이슈화할 계획이다. 모두 언론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전면전이다. 세계언론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공직자들의 '언론반란'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긍정적 시각>
완장.사이비언론 축출
언론 기능 회복 촉진

전문가들은 올들어 갑자기 공무원들의 언론관련 집단행동이 분출된 배경을 크게 두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의견을 결집할 수 있는 직장협의회가 발족된 점, 다른 하나는 '언론소외계층'이 제도언론에 맞서 '맞불여론'을 놓을 수 있는 인터넷과 대안언론이 발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민주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긍정적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관료제의 해체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단체장의 무소불위한 인사권, 언론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 젖어 있던 하위직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출구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에는 공적으로 운영되야 할 기자실이나 홍보실이 단체장이나 고위간부의 나팔수 노릇은 하지만, 하위직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단해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 공직사회나 시민단체 등도 이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수년간 구청 공보담당을 역임한 한 공무원은 "최근 공무원들의 언론관련 집단행동은 언론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언론 행태에 대해 대응한 것이다"며 "그동안 해당 기관장이나 단체장도 못했던 일을 직협이 대신 해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가장 못마땅해 하는 잘못된 언론행태로 "기사 방향을 예단해 놓고 필이 가는대로 써대는 편향된, 짜맞추기식 보도"라고 지목하고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발이 언론을 정화하는데 일조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참여자치21 나기백사무처장은 긍정적이다고 단언한다. 그는 "집단간에는 상호 긴장감이 있어야 발전하는데, 공무원들은 기자들한테 일방적으로 굴종해 왔다"며 "집단적인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공무원들의 저항이 기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편파보도나 보복기사를 쓰기 힘들게 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공무원들을 기사로 협박해서 생존해 나가는 일부 '완장 언론'이나 사이비기자가 생존할 수 없는 토양이 조성된다는 시각이다.

<부정적인 시각>
언론 비판 기능 위축
힘겨루기식 대결구도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자칫 비판과 견제가 생명인 언론기능을 크게 위축시키거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공무원들의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공직 내부의 부조리 등에 대해서는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면서 집단의 힘으로 자신들의 이익만 보호하고 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목포시청공무원과 갈등관계에 있는 호남신문의 한 기자는 "최근 언론에 대한 공무원들의 저항은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적 당위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비판적인 언론에 집단의 힘으로 대항함으로써 자기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이견도 존재한다. 나기백사무처장은 "물론 공무원들이 자기집단 보호목적으로 취재를 방해하거나 비판과 견제를 위축하는 것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경우에는 언론이 비판적으로 보도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국, '칼자루'는 여전히 언론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사회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무조건 단체행동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힘겨루기 대결의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목포시청 공무원들의 호남신문거부사태에 대해서는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온정적 여론도 있지만, 사전에 정정보도나 반론권 등 언론중재신청을 거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이에대한 공무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설남술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부위원장(광주시 북구청)은 "법적인 대응방법이 있는 것은 알지만 언론의 눈치를 더 볼 수 밖에 없는 단체장은 물론 중간간부부터 승인을 안 해주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러다보니 한번 속 쓰리고 만다는 심정으로 있다가, 하다 하다 안되니까 그런 식으로 분출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계-이익단체 시각 못 벗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언론저항'은 이익단체적 시각에서 크게 못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재현 광주시 직장협의회장은 "언론에서는 직협의 정체성까지 들먹이지만, 직협의 기본목적이 회원의 고충처리, 사무환경개선, 복지증진, 기관의 발전도모를 주활동으로 하는 것 아니냐"며 "그 범위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대처하기 때문에 월권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직협 관계자들은 경우는 다르지만 왕자관 인감사기대출 사건과 관련, 광주시 동구청 공무원들이 나서 삼성생명과 대립하고 있는 것 역시 이의 연장선상이고, 전공련에서도 같은 회원이기 때문에 고충을 풀어주기 위해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이같은 시각은 '언론저항'에서도 엿볼 수 있다. 광산구 직협의 당초 운동은 눈치구독 거부와 주재기자제도 폐지였다. 그러나 주재기자제도폐지 운동은 시늉에 그쳐 "자기들 집단이기만 해결하고 그만 뒀다. 언론 본연의 기능이랄지 하는 문제는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언론도 이 부분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문예회관 폭행시비와 관련, 성명을 낸 PD연합회광주전남지부나 KBC노조는 공식대응에 나서게 된 배경을 스스로 '이익단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동욱 신문개혁국민행동광주전남본부장은 이와관련, "PD연합회와 광주전남기자협회 등 지역의 대표적인 두 언론단체가 단순한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며 개탄하고 "회원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언론이 어떻게 하면 바로 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광주전남기자협회는 목포시청공무원들의 호남신문거부 사태에 대해 '언론 자유침해'라는 논조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익단체간 힘겨루기로 가선 곤란
양측 모두 '공적기업' 잊지 말아야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는 시민들은 공무원과 언론간의 갈등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그러나 언론기능 회복, 토론과 공론의 장 활성화도 어디까지나 사적 또는 집단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때야만 가능하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금자 변호사는 공직자들과 언론간의 보도를 둘러싼 법적분쟁과 관련 "공무원들은 자신이 '공인'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배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언론보도와 관련 '공인'과 '사인'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공무원신분을 추구한 사람들은 공공의 밀접한 감시의 대상이 되는 위험을 처음부터 감수했기 때문에 공적업무에 관련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공직자는 곧 공인'임을 못박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에 불만이 있더라도 '공인'입장에서는 법적 쟁송을 통해 승소하기 어렵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언론입장에서는 '언론 자유'에 앞서 무엇보다 '언론 기능'을 회복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류한호 교수(광주대 언론정보학부)는 "공무원들이 과도하게 언론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언론인들이 엄정하게 감시하고, 상식과 이성을 가지고 기사를 쓰면 해소될 것"이라며 "기사쓰기에 보다 긴장감을 갖는 것이 보다 힘있는 언론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언론 자유'가 특정 언론사나 언론만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모두의 기본권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잘못된 취재관행이나 언론을 사익화하는 보도행태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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