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길
행복으로 가는 길
  • 문틈/시인
  • 승인 2013.02.0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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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생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말아라. 험난한 6.25때도 살아 남았다.” 내가 비관적으로 세상을 얘기하면 아버지는 아무리 곤란한 처지에서도 인간은 살아남게 마련이라고 격려를 해주곤 했다.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사람들이 경기 불황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들 해서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다. 먹고 살기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이야기다. 나는 경제를 모르기 때문에 왜 살기가 어려워졌는지 그럴싸한 경제이론 같은 것으로 설명할 재주가 없다.

다만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보다 요즘 사람들은 다 잘 먹고 더 잘 입고 사치스럽게 살다 보니 곳간이 비게 되고 이래서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엔 저축률이 30%를 웃돌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삼분의 1이 될까말까다. 그러니 세상살이가 어려워진 것이 당연하다.

이런 우리를 보고 유럽의 한 신문은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꼬기도 했다. 분명히 옛날보다 더 잘 살게 된 것은 사실이고, 그때보다 더 부강한 나라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만고불변의 진리는 절제와 검소를 잃으면 개인도 국가도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소비를 해주어야 공장이 돌아가고 공장이 돌아가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멍청하지 않다면 그 말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멍청한 말을 나는 도무지 믿지 않는다. 개인이 있어야 국가가 있을 것일진대 먼저 나를 튼실히 방비하지 않고 무슨 소비란 말인가. 지금은 저축이 먼저다. 게다가 우리 인간은 너나 할것없이 현재 낭비를 통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덜 쓰는 주의자다. 극히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 생각을 않는다. 무엇 때문에 6개월마다 한번씩 휴대폰을 바꾸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고깃국이 밥상의 주 메뉴였던 때가 있었다. 우리 집 밥상에는 육고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육고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고봉으로 밥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정량의 40%로 소식해야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도 상식이 되어 있다.
우리의 지금까지의 타성에 젖은 생활양식을 바꾼다면 생각보다 덜 쓰고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 차가 두 대 있는 집은 한 대로 줄이고, 과도한 과외비 지출을 줄인다면 돈, 돈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 별로 득도 안되는 비싼 해외여행을 뻔질나게 가는 것도 우습다.

절제된 소비가 개인을 구하고 나라를 구한다. 지금과 같은 소비 행태로는 더 좋아질 리가 없다. 어느 일본인이 내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일년 동안 버리는 음식이면 일본 사람들이 일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라고. 경제가 어렵다고 한탄하지 말고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생각해볼 때다.
새 정부는 국민한테 퍼주기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것을 해주겠다, 저것을 해주겠다, 국민을 붕 뜨게 해놓았다.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국민에게 절제와 검소를 요구했어야 맞다. 국민행복 시대가 어떻게 돈을 펑 펑 쓰는 데서 온단 말인가. 물질소비 경제의 개선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행복 시대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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