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죽음’을 접하고
‘서점의 죽음’을 접하고
  • 최종후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교수)
  • 승인 2013.01.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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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후 고려대 교수

서생은 수삼일전 ‘다산포럼’에서 간절하고도 슬픈 글을 접했으니, 송재소 선생의 ‘서점의 죽음’ 이다. 글의 앞부분을 다시 소개한다.

“지난 달 모 일간지에는 우리나라 서점의 실태를 조사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249개 시‧군‧구의 서점을 조사한 결과, 경북 영양군을 비롯한 4개 군은 서점이 하나도 없는 ‘서점 사망 지역’이고, 강원도 고성군을 비롯한 30곳은 서점이 1개 뿐인 이른바 ‘서점 멸종 위기 지역’으로 파악되었다.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구 5만 명당 서점이 1개 미만인 지역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출판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1997년에 전국 5407개에 달하던 서점이 2011년에는 1752개로 줄었다고 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정말 서점이 ‘멸종’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대학가이다. 대학가에 한 두 개씩 있었던 서점들이 문을 닫고 지금은 그 자리에 미용실, 술집, PC방, 양장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학가가 이럴진댄 다른 곳은 말 할 필요도 없다. (하략)

‘서점의 죽음’을 접하고 항진적(亢進的)으로 떠오른 것은 서생의 대학시절 모습이다. 이제 서생의 모교, 고려대 앞에 오래된 서점은 없다. 서생이 학생시절 드나들던 서점 자리는 편의점, 커피전문점이 점령하고 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나칠 때면 물끄러미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옛날 서생의 잔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재학시절 단골로 드나들던 헌책방이 있었다. 홍파초등학교 가는 쪽에 있던 ‘경복서점’이 그곳이다.

당시 고교생을 대상으로 과외선생을 했던 서생은 과외수고료가 생기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정지용 ‘백록담’ 초간본, 황동규-마종기-김영태 3인 시집 ‘평균율1,2’, 신석초 ‘바라춤’, 박재삼 ‘춘향이 마음’, 김지하 ‘황토’ 초간본, ‘오적’이 실렸던 ‘사상계’ 폐간호(1970년 5월호), ‘구리 이순신’, ‘앵적가’가 실렸던 ‘말’, ‘고대문화 1,2집’, ‘공간 창간호­30호’... 모두 모두 그곳에서 구한 책들이다. 당시 월간지 ‘공간’에는 문화계 전반을 아우르는 격조있는 기획물이 자주 실려 이를 구해본 것이다. ‘공간’ 창간호는 1966년 11월에 나왔다. 창간호 부터 30호는 헌책방에서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모두 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30호 이후 발행본도 상당 분량을 구했다.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한국 현대건축의 산실 ‘공간’ 부도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이러한 인연을 가진 서생은 유별스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서생이 가지고 있는 천여 권 시집 중에서 수백 권은 그곳에서 구한 것이다. 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던 클래식을 틀어주던 ‘아람다방’의 커피가 150원 할 적인데, 당시 금서(禁書)이자 희귀본이었던 정지용 ‘백록담’ 초간본은 14,000원, 김지하 ‘황토’ 초간본은 7,000원에 샀다. 그 책을 손에 넣던 날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책을 끼고 나홀로 홍파초등학교 근처 개천가 단골 포장마차에서 입에 털어 넣던 소주 맛은 꿀맛에 다르지 않았다. 그윽한 세월이었다.

수삼년 그리고도 수삼년... 부적처럼 지니고 있었다. 이미 여러해 전, 전술한 시집들은 고향땅 대학 도서관에, ‘고대문화1,2’는 모교 세종캠퍼스 도서관에, ‘공간 창간호–30호’는 서생이 좋아하는 건축학 교수에게 드렸다. 시집보낸 책들은 잘 있는지?

고대문화 1집을 보면, 1955년 모교 개교 50년을 기념하여 그 책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책 편집을 지도하신 교수는 조지훈 선생이다. 2집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960년에 출간되었다. 아마도 돈이 없어 5년 간격을 두고 만들지 않았을까?

단골 손님이라고 가끔 자장면도 사주던 경복서적 주인아저씨는 지금 살아 계실까? 무심했구나, 서생의 오늘이 있기에는 그 어른 덕도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 어른이 어디에서 피고지고 하는지 소식조차 모르고 세월을 흘러 보냈으니... 내년 2014년은 서생이 대학에 입학한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서생이 드나들던 모교 인근 서점은 다 죽었다. 모든 것이 떠나간 지금... 모교, 고대 앞은 너무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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