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65. 포청천(包靑天)으로 유명한 합비(合肥)
중국이야기 65. 포청천(包靑天)으로 유명한 합비(合肥)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3.01.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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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2011년 8월 안휘성 체인점 오픈 기념으로 ‘포청천’의 이미지를 프린트한 머그컵(포공컵)을 나눠 준 적이 있다. ‘포공컵’에는 포청천과 안후이성의 성 소재지 허페이(합비)의 병음 ‘Hefei’와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졌다.
그런데 포공(포청천)의 26대 후손 포쉰안 포공정신전승연구회 회장은 포공 컵에 새겨진 그림이 실제 이미지와 차이가 크며 스타벅스가 ‘포청천’의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판관 포청천은 송나라 때 문신이자 유명한 정치가이다. 송(宋)나라 인종 때 개봉부윤으로 재직 중의 판결이 19세기 석옥곤의 ‘삼협오의’로 극화되어 알려졌다. 요즘 케이블TV에서 방영 중이다.
포청천은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관직은 개봉부윤을 거쳐 추밀원부사에 이르렀으며 예부상서와 이부상서에 추증되었다. 사후 중국 무속에서 신으로도 숭배되며, 사후 지옥 중 5번째 지옥을 주관하는 심판관이 되었다는 전설도 나타났다.
그는 개봉부윤으로 재직 중, 고관대작을 가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렸으며,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부패와 비리를 추상같이 척결하여 이름이 높았다. 그의 고택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합비에서 황산으로 가는 길에는 포청천이 머물던 포공사가 있다.

그가 부임 시 받았다는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는 실제 개봉에 현존하고 있다. 작두는 사형 집행시에만 쓰던 것으로, 용작두는 황족과 왕족, 호작두는 관리와 귀족, 개작두는 일반 평민과 천민에게 적용하던 사형기구였다.

또한 이홍장(李鴻章)의 집도 합비에 있다. 청 말기의 중신으로 청의 부국강병을 위한 양무(洋務)운동을 주도한 사람이다. 태평천국의 난 이후 정계의 실력자로 등장하였으나, 청일 전쟁을 계기로 실각하였다.
그는 본래 청나라 말기 나라의 혼란에 즈음하여 발생한 여러 민병단을 이끌고 있었다. 그의 군대는 본래 '회군'이라 이름 지어졌는데, 태평천국의 난에서 스승인 증국번과 함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을 세웠다 하여 조정에 등용되었다.

증국번 사후, 이홍장은 청나라의 대신이 되어, 북양대신의 자리에 오른다. 북양대신은 본래 남양대신과 함께 청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는 자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정 유일의 실력자의 위치이다.
이홍장은 일본과 영국 등 밀려드는 외세에 대항하여 양무운동을 펼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양무운동은 청나라 본래의 정치체계는 유지한 채 군사, 과학 등의 분야에서는 서구화를 추진하여 외세에 당당히 맞서려는 운동이었다.

양무운동은 청나라의 만주족 지배층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조정의 실권자인 서태후가 그를 후원하였으며, 이홍장 역시 한족이기는 하나, 청나라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양무운동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독일, 영국 등 외국에서 파견된 장교들이 이홍장의 북양군을 훈련시켰으며, 서양에서 들어온 무기와 기술을 이용하여 이홍장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기의 손에 쥐게 된다.
그들은 청나라의 멸망 이후 각종 군벌을 형성하였으며, 장개석에게 토벌되기 전까지 중국의 북방을 장악하였다. 이홍장의 후계자인 원세개(袁世凱)는 손문과 함께 중화민국을 창설하였지만, 곧 손문을 배신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병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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