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
  • 문틈/시인
  • 승인 2013.01.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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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떤 분에게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은 행복 고민이라는 말을 썼다. 행복 고민? 슬하에 올해 마흔, 서른일곱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딸은 시집을 갔으나 아들들은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걱정이나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분의 이야기는 이랬다. 일평생 부부가 고생을 하여 지금은 가까스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 형편이라고 했다. 어디 아픈 데도 없다고 하면서 그러면 되었지 자식의 결혼 문제 같은 것은 자신의 고민거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것을 고민하는 것은 부모에게 행복 고민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듣는 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눈치였다.

듣는 사람들은 처음엔 뜨악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렇다고 반대의사를 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 문제에 고민하는 것은 고민이 아니라 행복한 고민이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런 고민은 오히려 행복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분의 지난 인생사가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정도의 온갖 고난으로 점철되었고, 그 가시밭길을 헤쳐 온 신고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분의 말 즉 행복 고민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힘든 인생에서 할 일은 다한 셈인데 자식이 결혼하는 문제까지 고민하는 것은 그분으로서는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딴은 그분의 말이 옳다. 주위를 보면 자식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엄격히 말한다면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지만 결혼 문제는 자식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지 부모가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부모의 인생사가 어땠든 부모는 어디까지나 자식의 진로에서 멘토나 상담역에 그칠 따름이다. 다 큰 자식의 장래는 자식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부모가 관여할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식고민을 하는 것일까.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일이 없게 되었다고 해서 부모가 삶의 고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부, 명예, 권위, 건강을 추구하는 또 다른 욕망들이 남아 있다. 그 안에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바람도 포함되어 있다. 고래로 자식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탁받아 왔다. 자식도 그것을 당연시해왔다. 그런 점에서 그 분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의 견해도 충분히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장례식장에 모셔져 있는 고인의 영정에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부모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부모의 꿈이 아니라 제 꿈을 이루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데서 그친다.
내게는 아들 둘이 있지만 나는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도록 지원했을 뿐 무엇을 강요하거나 강권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창조해나가야 할 인생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다. 자식의 인생은 부모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행복 고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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