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임종 지켜본 김혜진씨
500명 임종 지켜본 김혜진씨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3.01.0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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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을 남겨둔다면.......?
치유 필요한 이들 위해 아로마 테라피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속마음을 표현하고 살지 못해 아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그동안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이제는 나를 용서했으면 좋겠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이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김혜진(40)씨의 하루는 마음과 마음으로 시작한다. 김 씨가 5년 동안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면서 임종을 보게 된 환자들만 해도 500여명. 그녀는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매주 금요일 전남대 화순병원 호스피스 병동으로 자원봉사를 간다. 환자들은 그녀에게 하나둘씩 가슴에 간직한 속마음을 끄집어 털어놓는다.

호스피스란 죽음 직전 남은 여생을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인 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은 호스피스가 아닌 아로마테라피스트다. 아로마 천연 비누·양초 만들기, 100% 천연 에센스 오일을 이용하여 몸과 마음의 평온을 얻는 치료요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재능을 지닌 그녀는 아로마 치료요법을 통해 임종을 앞둔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있는 동안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호스피스 병동의 ‘사랑의 연결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단순히 완화요법이 목적인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감정을 나누고 심리적인 것과 함께 한다.

김 씨에 따르면 호스피스 병동에는 남편이 환자로 오게 되면 아내가 병간호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부인이 환자로 오게 되면 남편이 병간호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한 번은 아내의 병간호를 하던 남편이 그녀를 찾아 24살에 만나 첫사랑인 아내와 28세에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고 한다. 환자는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진통제를 맞고 수면상태였지만 그 남편은 KTX를 타고 오는 3시간 내내 부인 옆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러한 사연을 지녔던 남편은 아내가 아로마 바다모양초를 보고 “여보... 바다소리가 날 것 같아....”라는 말을 듣자 남편은 인터넷을 찾아 파도치는 소리를 아내에게 들려주는 가슴 뜨거운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내는 임종 직전이었다. 남편은 부인을 두고 “가난한 나를 만나 고생만 하다 가려고 합니다”라고 하며, 환자는 선망으로 인해 정신을 놓기도 하고 헛소리도 했지만 “다시는 이러한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아로마테라피스트 김혜진(40)씨
이렇게 그녀가 매번 가슴 아픈 일을 겪어야 하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게된 계기는 소중한 어린 딸을 잃고 나서다. 그녀의 딸은 사고로 인해 너무나도 짧은 생후 12개월을 살고 생을 마감하게 됐다. 당시 김 씨는 울자리도 없이 불면증에 시달리며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로마테라피 공부를 했던 그녀는 “나처럼 아이를 잃고 우는 엄마들이 없었으면 한다”라는 마음으로 아로마테라피 자원봉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통해서 환자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오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한 슬픔을 겪어본 그녀에게 환자들은 “자네는 꼭 내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말을 해”라는 말을 하며 치부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의 말들을 털어 놓았다.

첫 프로그램을 나갔을 때 폐암이었던 75세의 할아버지가 “우리 각시와 50년 넘게 살면서 나는 해준 것이 하나도 없어... 진주 비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라며 찾아오셨다고 한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그녀는 ‘아로마 테라피’ 치료요법을 통해 눈을 감는 마지막 날까지 풀고 가지 못한 것들을 풀고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한번은 11세의 최연소 환자를 만나서 “우리 다음 주에도 꼭 만나자”라는 말을 하고 다음 주에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 분. 오늘 아침에 임종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소통을 유독 거부했었던 23세 젊은 여자 환자와 아로마 치료요법을 통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고, 그 환자는 얼마 되지 않아 1인실로 옮겨졌다. 환자의 임종을 함께 해주기 위해 1인실을 찾아간 그녀는 “응..언니 왔어...?”라는 말을 할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환자의 가족들에게서 “친척도 못 알아 봤는데 선생님을 알아보네요...”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그녀에게는 2~3일 정도 잠 못 이루게 하는 사연들이 너무나도 많다.

김 씨는 나를 찾아오는 환자와 가족들이 늘 감정에 충실해 질 수 있도록 눈물이 나면 울 수 있도록 울 자리를 만들어 주고, 웃음이 나면 더욱 웃을 수 있도록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세상은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하지만 떠나는 자와 남는 자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김혜진씨는 오늘도 호스피스 병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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