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60 최부선생이 표착(漂着)한 우두외양(牛頭外洋)
중국이야기 60 최부선생이 표착(漂着)한 우두외양(牛頭外洋)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2.12.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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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나주 출신 최부(崔溥)선생이 1488년 제주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던 중 추자도 앞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14일간 표류하다가 1월 16일 삼문현 우두외양(牛頭外洋)에 도착하였다.
삼문현이 옛날에는 임해현(臨海縣)에 속했으나, 지금은 삼문현(三門縣)에 속해 있다. 소의 머리를 닮아서 우두산이라 이름 붙인 우두산 뒤쪽을 외양이라고 부른다. 우두외양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서 멀리 바다의 동 쪽에 두 개의 크고 작은 섬이 보인다. 최부 일행은 닭처럼 생긴 소계도(小鷄島)와 대계도(大鷄島) 사이에서 조수에 밀려 해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두외양’이 소머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지금은 산봉우리를 밀어버리느라 한창 공사 중에 있었다.
최부의 일기 내용을 생각하며 43명의 조선인들이 심한 풍랑의 바다에서 살길을 찾아 뭍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생각난다. 최부 선생 일행이 상륙하자, 마을 사람들이 나와 왜구(倭寇)로 오인받아 죽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왜구가 나타나면 먼저 죽이고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최부 선생은 “나는 조선인이니 관청에 알려주라”고 말하자 바로 관청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조선인임이 밝혀지자, 존경과 환대를 받게 되었다. 당시 왜구들은 어린애들을 대나무에 메달아 놓고, 뜨거운 물을 끼언저 죽이거나, 임신한 여자들을 아들인가 딸인가 내기해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갈라 아이를 끄집어내는 짓을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최부 선생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 왜구로 몰릴 수 있었다.
최부 선생은 태주를 출발하여 영파, 항주를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을 때는 황제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으며, 북경을 출발하여 요양, 구련성을 거쳐 135일 만에 귀국하여, 중국 3대 기행문의 하나인 ‘표해록(漂海錄)’을 남겼다.
표해록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부[寧波府]에 표류, 온갖 고난을 겪고 반년 만에 귀국하여, 왕명으로 1487년 당시 명나라(중국) 연안의 해로(海路)·기후·산천·도로·관부(官府)·풍속·군사·교통·도회지 풍경 등을 소개한 책이다.
천태산으로 가는 길에 석량폭포(石樑瀑布)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말해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길을 따라 30여분 숲속을 지나면 폭포가 나온다. 폭포까지 가는 길은 대형 버스가 들어 갈 수 없어 조금 불편하지만, 폭포에 도착하기만 하면 참으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의 무술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폭포로 명나라시대 여행가 서하객(徐賀客)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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