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자연 설계도’ 찾기
숨겨진 ‘자연 설계도’ 찾기
  •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2.12.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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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나노기술의 풍부한 원리가 감춰져 있다

 상어 피부 나노수영복으로 인간한계 도전

1998년 스피도사가 개발한 수영복에는 상어 피부의 과학이 숨어 있다. 상어는 시속 수십 km로 빠르게 헤엄을 친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상어 피부 표면에 삼각형의 아주 미세한 나노 크기의 돌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돌기가 물살을 잡았다가 내보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물살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아 물의 저항을 크게 줄여 준다. 수영복 표면을 상어 피부에서 본 따 삼각형 돌기 모양의 미세 홈들로 처리했더니 과거에 비해 굉장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많은 수영 선수들이 상어 피부모양을 본 떠 표면의 나노돌기가 물의 저항을 크게 줄여주는 전신수영복을 착용했다. 최근에는 올림픽에서 전신수영복 착용을 금지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 보다 가벼운 폴리프로플렌 소재로 만든 수영복이 물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기록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영복의 변천은 항력을 줄이기 위한 항공공학과 인체에 대한 인간공학이 접목된 연구로 기능성이 뛰어난 첨단 나노소재의 개발 결과다. 최근에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잠수함을 제작하는 연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영, 사이클, 빙상, 스키 등 속도가 우선시 되는 경기에서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나노기술을 이용한 스포츠웨어의 개발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세포호흡’에서 고효율 에너지 신기술 탐구

자연은 나노기술의 보고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나노기술의 원리가 곳곳에 감춰져 있다. 모든 생명체는 나노크기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운동원리가 지배한다.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DNA복제, 다양한 단백질의 생성과 소멸, 근육운동을 위한 생체 에너지의 생성 원리 등 생명의 맨 밑바닥에서 진행되는 운동현상은 나노바이오 연구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이 생명현상의 다양한 측면을 관찰하고 활용하는 데 머물렀다면 최신 나노기술은 그런 생명현상의 원리를 물리화학적 방법, 즉 기계적 운동으로 재현함으로써 인류의 진화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운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심장,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는 단순한 동작조차도 심장근육, 안근육이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공급돼야 가능하다. 우리 몸속에서 이런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은 ATP로 알려져 있다. 세 개의 인산(P)이 뭉쳐서 만들어진 ATP(Adenosine Triphosphate)가 효소의 도움을 받아 인산이 한 개 떨어져 나가면서 두 개의 인산으로 구성된 ADP(Adenosine Diphosphate)로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다. 이때 방출되는 ATP 한 개의 에너지는 7.3킬로 칼로리다. 이런 에너지가 수억 개씩 동시에 만들어지면 역도선수 장미란처럼 근육에서 한꺼번에 큰 힘을 순간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다.

신체 내부에서 근육의 수축과 이완, 단백질 형성, 체온유지, 물질운반 등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데는 모두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가 사용된다. ATP를 만드는 에너지 생산 공장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다. 음식물에 함유된 포도당은 에너지가 담겨있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세포호흡’을 통해 포도당을 분해시킬 때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ADP를 다시 ATP로 바꾸는 것이다. 자동차가 엔진의 휘발유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런데 자동차의 경우 휘발유가 연소될 때 효율이 약 25% 정도이고 나머지 75%는 새나가 버린다.

여기에 비해 자연의 원리에 기초한 세포호흡의 에너지 효율은 40% 정도로 훨씬 높다. 이런 차이는 연소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휘발유 연소는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에 효율이 낮다. 이와 달리 미토콘드리아에서는 포도당이 한꺼번에 산화되지 않고 효소의 조절 작용으로 여러 중간단계로 나뉘어 산화되기 때문에 에너지 낭비가 적고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세포호흡의 원리를 모방하여 새로운 에너지 기술에 도전한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몸속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노생체로봇에 에너지원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도 이런 데서 힌트를 얻고 있다.

진화의 성과 활용하는 ‘자연모사공학’

자연 속에는 나노기술의 풍부한 원리가 포함돼 있다. 인간은 아직까지도 그 원리의 아주 작은 영역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이 같은 자연현상, 특히 생명현상 속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 나노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예컨대 파리나 잠자리는 공중에서 선회, 후진, 급회전, 급가속을 자유자재로 한다. 이 모습을 모방해서 만든 게 헬리콥터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잠자리의 정교한 비행기술에 비한다면 훨씬 뒤떨어진 셈이다. 거미줄은 말랑말랑한 콜라겐이 원료인 단백질로 구성됐지만 인간이 개발한 강철보다 동일한 무게라면 수십배나 더 강하다.

인간이 개발한 나노섬유가 어느 정도 거미줄과 가까운 수준에 접근하고 있지만 아예 거미줄 자체를 방탄용 섬유나, 생체 수술용 섬유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홍합은 물속에서도 바위에 잘 들어붙는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홍합 속에서 배출되는 생화학물질을 찾아내 물기가 있는 표면에도 잘 달라붙는 나노접착제를 개발 중이다. 이렇게 개발된 나노접착제는 수술할 때 피가 흘러나와도 상처 난 부위를 쉽게 접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연 속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이렇듯 훌륭한 나노기술의 원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지구가 생성된 이래 적어도 36억년 이상안 생존을 위해 진화를 거듭해온 결과다. 진화를 통해 척박한 환경에 가장 적합한 구조와 메커니즘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자연모사공학’은 환경과 생명체의 비밀을 연구해서 인간에게 유익한 인공물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연모사공학의 선구자 재닌 베니어스(Janine Benyus)는 ‘인간이 무언가를 개발하려고 할 때, 자연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을 모사해왔다. 동물의 발톱을 본 따서 전쟁이나 사냥에 필요한 화살촉을 만들었고, 새들의 움직임을 모방해 비행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연모사가 ‘공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만큼 발달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이유는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IT기술 등 첨단기술의 성과와 결합하면서 ‘자연모사’가 과거의 단순 모방을 넘어서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신기술 개발이 가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세균의 ‘편모 운동’에서 초소형 엔진기술 배운다

그 가운데 나노바이오기술은 생명체 속에 숨겨져 있는 나노기술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영역이다. 지금까지 자연현상 혹은 생명현상으로만 여겼던 ‘신비로운 현상’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이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모넬라 세균은 초소형 추진체인 편모를 가지고 있다. 이 세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편모 속의 작은 분자가 일으키는 ‘모터작용’ 때문이다. 편모는 채찍 같은 작은 섬유질 다발을 회전시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분자 모터’다.

살모넬라는 이런 엔진을 6~7개 가지고 있다. 지름이 3천만분의 1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이 엔진들은 고정된 링 속에서 회전하는 회전자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만든 전기모터와 유사하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아 일분에 약 1만5천회 정도의 놀라운 속도로 회전한다. 그런 회전속도라면 보통 많은 열이 날 텐데 온도도 그대로다.

과학자들은 많은 돈을 들여 이 모터의 작동원리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편모 섬유질 속 나노 세계에서 분자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조차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미세한 나노세계에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인류가 언젠가는 이런 놀라운 자연의 설계정보를 모방하여 초소형 엔진기술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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