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59. 신라시대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태주(台州)
중국이야기 59. 신라시대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태주(台州)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2.12.1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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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시(余姚市)는 나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영파시에 속한 현급시이지만,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7천년의 하모도(河姆渡)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1973년에 이곳에서 벼농사 유지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석기(10%), 골기(70%) 목기와 토기 등이 다수 발굴되었다.
특히 나무나 대형 포유동물의 뼈로 만든 사(耜, 쟁기)를 사용하여 벼를 재배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벼 재배 기원과 세계의 벼농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유적을 고증한 결과 월족(越族)은 중국 최초로 벼를 재배한 민족이자 최초로 돼지를 사육한 민족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요시에는 유명한 사상가 왕양명(王陽明, 1472~1528), 서예가 우세남(虞世南, 558~638)의 고향이다. 왕양명은 명나라시대 인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인물로 원래 이름은 왕수인(王守仁)으로 무장 출신이다.
왕양명의 고택에 가 보았는데 아주 크고 호화로운 집이었다. 대학자는 가난한 집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 확실했다. 묘는 바로 옆의 소흥에 있다. 그의 집에 진삼불후(眞三不朽) 참으로 썩지 않는 3가지가 적혀 있다.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이다.
태주는 원래 시소재지가 임해시에 있었다. 황암(黃岩)과 노교(路橋) 사이를 연결하는 도시로, 새로 건설되는 도시이다. 관광지로 이름난 천태현의 국청사나 석량(石梁)폭포, 삼문현(三門縣)의 우두외양(牛頭外洋)이 있는 곳이다.
태주를 가기 위해서는 상해 포동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황암이란 공항에서 내려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며, 도로 양편으로 아름답게 나무와 꽃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시내에 성성공원은 잘 조성되어 있는데, 중앙의 호수와 분수대, 기다란 장랑(長廊) 그리고 대형 스크린 등이 어울린다. 태주는 항구 도시로 강빈공원에서 밤 항구를 바라보면 긴 다리가 저녁 불빛에 찬란하고, 항구가 호수처럼 되어 있어 호수인지 바다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강빈공원 중앙에는 커다란 기념비가 있는데, ‘절강천리 해당기념비(浙江千里 海塘紀念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태주는 ‘태주를 세계에 알리고, 태주는 세계로 나가자’ 라는 슬로건이다. 태주에 척계광(戚繼光, 1528~1588)장군의 석상이 있다. 명(明) 말기의 장수(將帥)로서 왜구(倭寇)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기효신서(紀效新書)> 등의 병서(兵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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