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를 주목하라3. 최미연, 유토피아를 짓다
이 작가를 주목하라3. 최미연, 유토피아를 짓다
  • 정인서 /미술경영
  • 승인 2012.11.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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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만의 아이콘으로 만든 무릉도원에 한번 가볼까?
어려서 꿈꾸어온 ‘일상유람’을 만나보는 새로운 시공간

그녀는 무척 수줍어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늘 조심스럽게 그림을 내놓는다. 그것은 그녀가 꿈꿔온 세상을 캔버스에 담아내려 하는 순간부터 그렇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소녀였다. 그림은 그녀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 이상이었다.
광주예술고를 거쳐 조선대 한국화과를 졸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느 학생과 다름없이 수묵과 함께 다양한 그림 작업을 했다. 2006년 대학 졸업작품전 이후 본격적인 작품제작을 통해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작품의 변화를 가져와 진경산수화로부터 변용된 현대적 조형미에 자기만의 아이콘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녀는 수묵의 번짐과 농담보다는 드로잉과 빈 공간에 채워넣은 채색이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켜 관객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도시탈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그림은 어디에선가 구경한 듯한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어린 시절 꿈을 꿀 때마다 하늘을 박차고 뛰어오르거나 한참동안 거닐면서 내려다본 마을을 닮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꿈은 잊히지 않지만 아직 그 마을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있다.
세상은 더욱 빨라진 속도를 자랑스러워하고 높은 빌딩을 유토피아의 상징으로 내놓곤 한다. “그래 자랑스러운 업적일 수 있지.”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너무 많은 그리고 복잡한 네트워크가 현대인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는다. 나의 방, 나의 집, 나의 도시 그리고 나의 꿈 ….

이러한 공간도 한계에 다다른다. 그래서 최미연은 도시탈출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에게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그녀에게 가면 나만의 도시 하나쯤 만들어서 휙~ 던져준다. 마치 동화세계에 빠져든 것처럼 때로는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거니는 것처럼 ‘in my city’가 펼쳐져 있다. 오밀조밀하고 마치 미로처럼 빠져드는 공간이지만 이내 내 세상에 온 듯하다. 그곳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 같으면서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바다 위에 둥실 떠다니는 산 같으면서도 닻을 내려놓고 정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이 같은 세상을 꾸며보고 싶다거나 그런 세상을 호령해보고 싶은 욕망도 내심 꿈틀거린다.

하찮은 자연물 하나에도 우주를 담아

그녀의 작업에 대한 시원을 찾자면 전통 산수화이다. 한지에 수묵작업을 통해 필력을 쌓아온 그녀는 진경산수를 모티브로 하여 채색작업을 통해 도시풍경을 재구성한다. 그녀의 작업은 재현의 범주를 벗어나 현재적인 눈을 통해 새로운 미의식으로 사실(寫實)을 표현해 냈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녀의 말마따나 겸재 정선의 작품을 보고 오늘의 세상을 그런 작업으로 재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유람’은 남도 산수의 관념적 풍경을 넘어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 새로운 도시사회의 관념적 풍경으로 환치된 모습을 의미한다.

그녀는 말한다. “자연의 원리와 역동성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의 유구함을 통해 유전하는 자연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담고 가장 하찮은 자연물 하나에도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했다. 윤회의 원리를 잠재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기억 속 이미지들이 조합되어 가상공간으로 새롭게 배치되고 도시 속에서 경험한 사건들은 인간의 기억에 집적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공존,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덧붙인다.

“아, 저곳에 가보고 싶다!”

그녀의 작품을 들여다보자. 최근 그녀가 발표한 작품은 두 가지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커다란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 보이는 바닷가 밀림지역 또는 산맥의 일부분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상을 드러낸다.

그녀가 만들어낸 신세계는 산일 수도 있고 섬일 수도 있는 다른 공간에 중세유럽의 마을이나 조선시대의 성곽을 희화화시켜 관객이 찾아가볼만한 이상향으로 만들어놓았다. 관객들에게 “아,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흥분을 자아나게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은 오밀조밀한 흔적이 남아있지만 바퀴 달린 풍선을 띄워놓고 그곳에 넓은 붓질로 이상향을 만들어간다. 위태로운 듯 하면서도 전혀 불안감을 주지 않는 재미가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주는 형식이다.

넓은 화면에 섬처럼 떠있는 도시를 보면 그래도 여유로움이 남는다. 하늘이나 바다를 연상시키는 색감으로 전체 화면을 장식하고 그 안에서 꾸며지는 세상은 복잡한 일상 속에 헤매는 현대인들이 탈출하여 찾아가는 유목민의 도시로 환생을 염원하는 듯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진 작가로

김민경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최미연은 와유(臥遊)를 통해 그가 그려내고 있는 자연과의 만남 속에 이상세계로의 초대는 우리가 그의 화면 안에서 노닐 수 있는 이유이다”면서 “현대적 공간과 접목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상세계의 산수는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좌절된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겪는 위기 또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는 필자만의 우려이길 바란다. 앞서 돋보기로 본 드로잉 작업이 다른 곳에선 지나치게 넓은 화면 구성으로 ‘지쳐있는 작업’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한 켠에 남아있다.
아직은 작가에게 작업 역량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을 때 드로잉지향적인 ‘도시형 산수화’가 작가를 더욱 굳건하게 다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것이 작업에 있어선 정말 힘든 구상과 시간을 쏟아 붓게 만들지만 이는 최미연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최미연은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고 이번이 3번째 개인전이다. 2010년 광주시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그녀는 올해 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35 공모전에서 통과되어 2012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다. 마침 광주롯데갤러리에서 12월 3일까지 광주롯데창작지원공모 선정 작가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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