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56- 서예의 성인,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중국이야기 56- 서예의 성인,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2.11.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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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박사
소흥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난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353년에 41명의 명사들과 함께 유상곡수(流觴曲水)에서 잔이 한 바퀴 돌 때까지 시연회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고대의 풍류 가운데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마다 시를 지어 화답하는 놀이가 유상곡수이다. 경주의 포석정이 그러한 유상곡수의 풍류가 행해졌던 유적이다.

대개 이 유상곡수의 풍류는 음력 3월 3일에 많이 행해졌다. 마음에 맞는 친지들이 둘러앉아 물에다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둥둥 떠서 자기 앞에 온다. 물이 곡수(曲水)로 굽어서 돌기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앞에 머물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에 둥둥 떠오는 술잔을 받는다는 것은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흐르는 물가에서 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상서롭지 못한 액운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서예를 하는 사람 치고 ‘난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유명한 필첩이 난정기인 것이다. 왕희지 글씨의 모든 요체가 여기에 들어 있다. 왕희지는 거위를 특히 좋아하여, 거위 한 마리를 가져온 사람에게 글씨 한 폭씩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거위를 길렀다는 장소인 아지(鵝池)가 있다. 아지의 아(鵞)자는 왕희자 쓰고, 지(池)자는 그의 아들 왕헌지가 썼다고 전한다. 아는 가늘게 썼으며, 지는 굵게 써있다.

중국 서예의 역사에서 왕희지라는 인물이 차지하는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 해서와 행서, 초서 등 대표적으로 꼽히는 세 종류의 서체를 완성해 중국의 서성(書聖)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의 결혼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동진을 건국하는 데 공이 컸던 왕도는 그의 백부(伯父)다. 승상을 맡고 있던 왕도에게 당시 태부(太傅)의 직에 있던 치감이라는 권세가가 혼사를 거론했다. 왕도의 조카들 중에서 사위를 고르고 싶다는 얘기였다.
왕도는 직접 사람을 보내 고르라는 대답을 하자, 며칠 뒤 치감은 자신의 수하를 보내 사윗감을 물색했다. 왕희지의 형제들과 사촌들은 몸을 단장하고 차림새를 가다듬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 이리저리 모여 앉아 토론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단 왕희지는 침상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으면서, 누가 왔는지 전혀 신경을 안 쓰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 위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필체를 가다듬는 연습 중이었던 셈이었다.

치감은 결국 배를 드러내 놓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왕희지를 사위로 선택했다. ‘집안 자제들이 머무르는 동쪽 건물의 침상에서 배를 내놓은 사람’이라는 뜻의 ‘탄복동상(坦腹東床)’은 그에 관한 성어로, 지금은 훌륭한 사위라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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