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과 민주주의 (6)
오웰과 민주주의 (6)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2.11.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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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오웰은 집산주의(集産主義, collectivism)에도 반대하고 시장 자본주의에도 반대하였다. 집산주의는 스탈린체제가 보여준 바와 같이 강제수용소 비밀경찰 지도자 우상화로 이어졌고 시장 자본주의는 독점을 낳고 시장 쟁탈전과 전쟁을 초해하게 됨으로, 민주적 가치를 잃지 않는 혁명적 사회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파하였다.

오늘날 경제 민주화가 민주화를 온전하게 하는 조건으로 한국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을 훨씬 뛰어 넘어서, 오웰은 강력한 경제적 기득권과 충돌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에 접근할 수 없음을 절감하였다. 히틀러에도 스탈린에도 반대하는 오웰에게 있어서 궁극적 귀숙은 민주주의였고 그러한 인식의 바탕은 영국사의 민주적 경험이었다.

의회는 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판능력을 가졌고 의원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부르죠아민주주의가 비록 충분치는 않지만 보존되고 확산되어야 할 가치가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훼손하고 신교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 형성된 도덕률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히틀러를 위해 권력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민주주의를 폐기하려는 시도는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톱으로 썰어내는 격이었다.

무책임하게도 모든 체제가 똑같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로 도덕과 정치에서 허무주의를 낳을 뿐이었다. 영국과 홍콩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법복을 걸치고 말총 가발을 쓴 판사를 오웰은 영국의 민주적 전통으로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판사이지만 판례에 따라 재판하고 흔들림 없이 법을 해석하고 어떤 경우든 뇌물을 받지 않는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현실과 환상, 민주주의와 특권, 협잡과 품위의 기이한 혼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국민을 오늘의 친숙한 모습으로 보존시켜준 타협들의 절묘한 그물망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에서 오웰은 그만큼 영국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치즘이 위세를 펼치고 대공황의 경제적 불황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겪고 있던 1930년대에 유럽은 중앙집중주의와 계획경제로의 흐름이 주류로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불황과 실업보다는 차라리 국가통제를 원해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로의 회귀는 불가능 한 것처럼 보였다. 나치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 인간진보는 막히기 때문에 승리해야 하고, 승리는 인민들의 자발적 동원이 가능한 사회주의로의 혁명적 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과 아울러 실재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들과 문화적 유산들은 보존되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들, 의회 민주주의, 정치적 자유와 언론자유에 대한 존중, 폭력에 대한 혐오, 삶의 품위 등 영국인의 사고와 행동에서 쉽게 소멸될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익숙한 유산들은 보존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오웰에게는 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것이 가장 쉽고 재미있는 오락의 하나가 된 세상이 개탄스러웠다.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모두 민주주의를 교묘하게 공격하고 또 멋대로 파괴하고 있었다. 돈과 특권의 힘은 여러 방면에 관철되고 있었는데 평생 장시간의 노동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들은 5년만에야 찾아오는 선거의 의미를 실감할 수 없었다.

사회의 경제구조가 불의하다면 ‘법과 정치체제는 그러한 부정의를 영속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당시의 영국을 카스트제도의 망령이 출몰하는 금권주의 나라로 지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오웰의 민주주의를 민주사회주의로 귀착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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