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불신시대 의원은 지능형보다 뚝심형?
행정불신시대 의원은 지능형보다 뚝심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운동가 서정훈의 광주시의회 예결위 참관기

"68년 이후 30년 간 금고를 맡긴 결과 98년에 600억 원의 수익감소가 있었어요. 이러고도 계속 시금고를 현재 은행에 맡길거요? 공개입찰 해야 한다니까요?.... 어떻게 할건지 기획관리실장! 답변해 보세요..."

지난 19일 2001년 제1회 추경안을 심의하는 광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지금 당장 답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한 의원의 질의가 25분간 계속됐다.


한 의원의 거칠고 고집스런 질의는
행정 못믿는 시민정서 단면


"당장 즉답을 하라니 애터지네. 참!"

배석한 공무원들 주변에선 탄식이 흘러 나왔다.

마침내 정회가 선포되고 "아니, 이 자리에서 어떻게 확답을 하라는 겁니까?" 공무원들의 볼멘소리에 이 의원은 "그러면 시장 나오시라고 하세요! 즉답 못하겠으면 시장보고 나오시라고 하세요!"하고 회의장을 빠져 나가버렸다.

과연 이 의원은 무슨 생각으로 거세게 밀어 부치며 당장 즉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일까. 집행부측의 신중하고 두리 뭉실한 답변에 적당히 봉합 할 수도 있을 텐데 끝까지 조이는 이유는 뭘까. 기대를 가지고 이 대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비록 다소 거칠고 투박한 형태의 일문일답이 계속되고 있지만, 질의자체가 예산안 심의와 관련해 적합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접근 방식에 있어서 집요함을 보이며 확신성 답변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지하철건설본부장과의 일문일답에서도 특유의 밀어붙이기 질의는 이어졌다.

지하철 설계잘못 구상권 청구하라

지하철 설계 잘못으로 180억원의 공사비가 증액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해당 설계사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설계 잘못으로 벌점까지 줬으면 당연히 구상권을 청구해야 되지 않겠어요? 말해 보세요!"

건교부의 의견을 들어 판단할 사항이라는 답변이 있자 마자 "아니 건교부의 의견을 들을 것도 말 것도 없어요. 민사, 형사를 다 따져 청구해야 해요. 다른데 눈치 볼 것 없다니까요. 시의 방침만 있으면 돼요. 어떻게 하실 건지 답변바랍니다"

매우 직설적인 화법으로 즉답을 요구하는 다그침은 계속되었다. 동료 의원이나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답을 달란다. 한발 더 나아가 시행시기와 방법까지 밝혀 달라고 선수치며 한참 앞질러 버리기까지 한다.

집행부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적극 검토 보고 하겠다"는 퇴로를 택해야 했다. 이 의원은 분명 작심한 것 같아 보였다.

비록 질의내용 자체가 전혀 새롭다거나 접근방식에서 치밀성과 논리성이 뛰어나 보이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광주시 행정의 안이한 예산운용 자세를 마음먹고 질타하겠다는 의도가 역력히 들어나 보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광주시는 시민을 더 이상 조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행정관습에서 하루 빨리 탈피 해야한다. 경제위기로 서민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뒷걸음치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실업 대란시대에 살고 있는 서민에게는 분명, 광주지하철은 원성의 대상이요, 행정불신의 원흉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의원은


우리는 한 의원의 다소 거칠고 고집스런 의정질의 형태를 통해서 행정불신이란 시민정서의 단면을 떠올릴 수 있었고, 어쩌면 현재의 자치실정에 맞는 주민의 대표는 '지식나열식'보다 '몸받치는 식'의 일꾼이 더 적합하게 요청되는 상황일 수 있다는 역설적 인식을 접해야 했다.

지방 선거 1년을 남겨 논 지금, 시민의 눈에 비친 지역의 참 일꾼 감은 과연 몇이나 될까. 광주시의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내내 머리를 감도는 것이었다.


서정훈 기자는 광주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는 시민기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