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반 스탈린 언론의 곤혹(4)
오웰의 반 스탈린 언론의 곤혹(4)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2.11.0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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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한국통일의 파트너가 북한 인민이 아니라 평양정권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이 햇볕정책을 낳았지만, 그 성과는 결코 괄목할 수준이 될 수는 없었다. 정책의 성과는 한국정부의 일방적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양정권의 대응과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의 성과인 탓으로, 결코 엿장수 흰 고무신짝 일수는 없었다. 그 결과 ‘퍼주기 논란’이 일어나고 이후의 후계정권은 햇볕정책을 부정하면서 남북의 적대적 공존을 더욱 강화해 오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적대적 공존이 강화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소망을 앞지르는 것이 체제권력의 주도권 경쟁이어서 통일의 주체이어야 할 남북의 인민은 ‘소 닭 보듯’ 한켠에 비켜 서 있는 형국이다. 체제권력들의 반통일 행보가 문제이지만 통일과 인권문제가 야기하는 엇박자가 민간수준에 있어서도 통일주장의 합의를 어렵게 한다. 현실은 명쾌한 논리를 반영하지 않고 논리는 현실에서 명증하게 논증되지 않는 곤혹스러움이 있을 성 싶은데, 조지 오웰의 경우에서도 이를 살필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이후 귀국하여 ‘스페인의 실상’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하여 소련 공산당의 기만적인 책동을 폭로했고 ‘카탈로니아에 경의를’이라는 소설에서는 스페인 사회주의 혁명 실패 뒤의 추하고 모순된 사실들을 들추어냈다. 기실 스탈린의 압도적인 영향 속에 있었던 스페인 공화국의 사회주의는 파시즘이었던 것이다.
오웰은 ‘1936년 12월경부터 사실상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던 정부는 혁명을 분쇄하기 시작했고, 혁명적 경향의 모든 단체와 개인들을 끔찍한 공포의 지배 속으로 몰아넣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렇지만 런던의 언론들은 사실을 왜곡하여 공산주의자들이 반혁명으로 기울고 있음을 외면하였다. 좌파지식인들은 진실이 파시스트 선전에 악용될 것을 우려하고 또 러시아 외교노선을 옹호하기 위해 기만적 언론에 편승하였다.

영국의 좌파주간지는 스페인에서 공산당의 반혁명적 행태를 폭로한 오웰의 원고를 반송했고 좌파독서회에서는 ‘카탈로니아에 경의를’이 원고가 완성되기도 전에 출판거절의 의사를 통고해 왔다. 몇 년 뒤 ‘동물농장’이 영국과 미국의 12개 출판사로부터 금기인 스탈린의 러시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한다. 1940년 초에는 가택수색을 통해 책들을 수사관들에게 압수당하기도 하였다.
스탈린과 러시아의 정책이 외부의 어떤 압력도 없었는데도 지식인 사이에서 신성시된 것은 스페인내전 당시와 1941년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영국과 러시아의 동맹과 국제정세 등이 부추겨 스탈린의 지혜와 노선을 의심하는 것은 불경으로 통했다. 파시스트가 창궐하는 세계사적 현실에서 자유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자유를 이론과 실천에서 폄하 하였는데, 반러시아 관점을 유포하는 것은 바로 적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탈린은 반 나치의 같은 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스탈린은 자국 인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독재자였던 것이다. 스탈린은 1932년 노동력의 이동과 소재를 감시하기 위해 도시주민의 국내여권 제도를 도입하고 1939년에는 모든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역사적 직업과 규율위반, 처벌의 징계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된 노동수첩을 휴대하도록 하였다. 허가 없이 일자리를 못 바꾸고 공장 감독은 20분 이상 지각한 자는 누구든지 지역의 경찰지청에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처벌은 6개월 교정 노동수용소형이었다.
오웰에게 진리와 자유언론은 국민적 통합과 사기의 가장 강력한 지지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곤혹스러움에 신념으로 맞서면서도 난감해하였을 오웰과 당시의 정황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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