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손권(孫權)의 고향과 황공망(黃公望)의 은거지
53 손권(孫權)의 고향과 황공망(黃公望)의 은거지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2.11.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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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구 박사

 절강성의 부양(富陽)시는 항주시에 속하는 현급시로 인구도 많고 커다란 도시이다. 시내에 부춘강이 흐르며, 항주 시내로 흐르는 전당강이 상류로 올라가면서 ‘부춘강(富春江)’이 되고, 그 위로 ‘신안강(新安江)’이라 부른다.
부양시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부양시의 용문 마을은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손권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항주에서 가깝다. 손권은 한나라 말기에 중국을 갈라놓았던 3국 가운데 하나인 동오의 황제로 남경(南京)을 중심으로 중국 동부지역을 차지했다.

형 손책을 계승하여 강동 6군을 다스리고 제압했다. 그는 208년 유비와 연합하여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대를 대파했으며, 222년 이릉(夷陵)전투에서 유비를 무찌르고, 같은 해 오왕임을 선포했다.
손권의 고향에 들어가면 용문(龍門)이란 글과 태극(太極) 마크가 크게 입구에 보인다. 산과 물속의 옛 동네 용문에 들어서면 그 어디나 청석을 깐 도로가 반겨주고 예쁜 자갈로 담을 쌓은 민가가 보이고 그 사이로 손씨(孫氏) 가문의 무릉도원이 다분하다. 오백여년전 건물이 지금까지 보전된 용문은 강남지역에서 보기 드문 산속의 옛동네로 인정된다.

부춘강(富春江) 용문산(龍門山) 기슭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사면에 산이 둘러서 있고 동남쪽에는 용문산이 우뚝 솟아 있다. 또 북쪽에는 부춘강과 용문계가 다정하게 만나 손을 잡는다. 용문계에는 또 낙차 100m에 달하는 용문산폭포가 장관이다. 흰 비단같은 폭포가 쏟아질듯 용담에 떨어지며 물보라로 자욱한 운무를 만들어 비경을 형성한다.
마을 가운데에 손씨대종사(孫氏大宗祠)가 있다. 이곳의 후손으로 손문(孫文)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손권(孫權)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集姓村)이다. 약 2천세대 7천명 정도 사는 데 90%가 손씨이다. 우리나라 낙안민속마을처럼 잘 보존되고 있다.

대치(大痴) 황공망은 강소성 상숙(常熟)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시대 화가로 1347~50년에 그린 ‘부춘산거도’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다. 원나라 4대가로 일컬어지며, 후대의 화가들은 황공망의 절개와 자연과의 친화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해박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

서예․음률․시문․그림 등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그 중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는데, 그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50세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말년에 이르러 도교에 심취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춘산에 은거하면서 그곳의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3년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그림의 반은 중국에 있고, 반은 대만에 있다.

대치선생이 중국에 있다면, 우리나라에 소치(小痴) 허련 (許鍊)선생이 있다. 소치 선생은 조선 말기의 화단에 남종화풍을 토착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화풍은 가전되어 오늘날 호남 화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소치 그림이 나보다 낫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가 지향했던 그림이 남종화였음은 황공망의 호인 대치(大痴)를 따 자신의 호를 ‘소치’라 한 것과, 중국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王維)의 자를 본떠 이름을 ‘유’(維)라고 고친 것에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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