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바람이 가슴에 스미는 가을이오면 시원스레 쭉 뻗어 오른 꽃대에 꽃잎들이 자유롭게 나부끼는 꽃무릇이 있다. 그런데 평생을 살아도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숙명의 아픔을 타고난 안타깝기도 한 꽃이다. 상사(相思)를 이겨내기라도 하려는 듯 화려한 꽃송이가 우산살처럼 퍼져서 피는 무한 꽃차례, 즉 산형화서(傘形花序)로 달려있다.
그 꽃들이 피어있는 절에는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내는 스님이 있다. 그래서 선운사는 옆 집 같이 더 애틋하기도 하다. 어느 여름날 스님을 만나러 갔다가 처음으로 절밥을 먹은 적이 있다. 스님들은 그간에 보지 못했던 뭔지 모를 야채를 맛있게 먹는다. 나도 한입 가득 욕심껏 넣는 순간, 어쩌나! 스님들 눈치 보느라 뱉을 수도 없고 그래서 꿀꺽 삼켜 버렸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독특한 향기의 ‘고수’라는 식물이다.
꽃무릇은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옛날부터 제지술이 발달한 사찰에서는 서화첩을 만드는데 접착제가 필요 했다. 그런데 꽃무릇 뿌리에는 전분 성분이 많으므로 재배하여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지방에 따라 꽃무릇을 가까이하면 눈에서 피가 난다 하여 ‘눈에피꽃’, 꽃이 핀 모습이 피안의 세계를 닮았다 하여 ‘피안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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