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과 언론자유 (3)
조지 오웰과 언론자유 (3)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2.10.26 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정치권력의 언론통제와 언론의 자기검열을 고발하는 도형래 연구원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을 박정희의 언론장악에 빗대어 5.16이후 언론이 계엄당국의 사전검열에 들어가 정상적인 언론기능이 마비된 정황을 소개하였다. 쿠데타 이후 군사재판에 회부된 언론인 수는 960명이었으며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 보도 개입을 관행화하였던 것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여야 부도덕하고 정당성 없는 정권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지 않는 사람은 권력으로 제압하면 그만이었다. 쿠데타로 국가폭력은 이미 그들의 장중지물이었다. 언론자유의 절대성을 믿고 주장했던 조지 오웰이 박정희 정권하의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서 한국 사람인 것이 괜스리 미안하고 민망스럽다.

조지 오웰이 언론자유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은 시대상황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이다. 아니 그 보다 먼저 진리에 대한 그의 인식과 정직성에 대한 그의 집착이었다. 오웰은 좌파 지식인들의 친러시아적 시각과는 달리 스탈린 러시아에 대해서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은 정직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에서의 혁명주의자들이 정당억압, 언론검열, 대량구속과 투옥으로 점철된 공포정치의 직접적 희생자였음에도 좌파언론들은 공포정치가 소련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화정부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다. 그들은 프랑코 파시스트들보다도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이 인민전선의 좌파세력의 분열책동을 획책하는 위장된 파시스트라고 모함하고 있었다.

좌파지식인들은 진실이 파시스트 선전에 악용될 것이라는 이유로, 허나 사실은 스탈린 러시아의 외교노선에 영합하기 위해서 기만적 언론에 동참했다. 진실들이 정보 전문가의 외양을 갖춘 언론들에 의해 고의로 은폐됨으로써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둘러싼 정파들의 협잡을 규지할 수 없었다. 오웰에게 있어서 객관적 진리는 분명한데, 전체주의는 이를 부정하고 공격하였다. 전체주의는 미래도 과거도 통제하였다.

사실은 존중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마침내 객관적 진실의 가능성마저 부정하게 될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민주사회주의를 믿었던 오웰은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같은 것으로 보아, 결국 영국의 자본주의와 소련공산당이 연대하여 새로운 전체주의 세계를 만들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동물농장’ ‘1984’년의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오웰에 의하면 스페인 내전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많은 거짓을 만들어냈다. 전투가 없었음에도 격전이 있다고 했고 수백 명이 살상됐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했고 용감하게 싸운 부대들이 겁쟁이와 배반자로 비난받던 것이 시대적 현실이었다.

오웰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의 저술들 ‘카탈로니아에 경의를’ ‘동물농장’이 공산당의 반혁명적 행태를 폭로한 연유로 출판이 거절되기도 하였는데, 스탈린의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음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오웰에 의하면 ‘진실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존경심이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언론뿐 아니라 부르조아 자유주의 언론에서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리의 문명은 무엇에 대해서도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종의 안개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탄식하였다. 그에 의하면 ‘뉴스가 없는데 뉴스가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트릭’이 20세기 영국언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유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권리’라고 정의하면서 정파적 갈등을 뛰어넘어서 자유와 인권의 영국 민주주의의 중심적 가치들에 헌신하였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