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역사기행 10 빨치산2
근현대역사기행 10 빨치산2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2.10.2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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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연구회 박동기 선생의 빨치산에 관한 입담이 일행들의 이날 기행을 뜻깊게 만들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위치한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뱀사골탐방안내소)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우선 빨치산 관련 전시장이 너무 비좁아 우리 일행 모두를 수용해 열심히 박동기 선생이 설명을 했지만 모형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얼추 듣고 나니 이제 자리를 떠나자고 말한다.
잠시 옆문으로 나오니 널따란 정원이 있는 듯 했고 지리산 자락이 펼쳐보였다. 여기가 지리산이라는 생각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아 단풍구경은 할 수 없었다. 다만 간간이 붉은 빛이 도는 나뭇잎들을 발견할 수 있어 그것으로 대신할 수 있으려니 하고 말았다.

이제 구례 화엄사 입구에 있는 식당에 점심이 예약되어 있다며 빨리 출발하자고 한다. 겨우 한 곳을 둘러보고 점심이라니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든다. 1층에 지리산 안내를 위한 사진과 모형들이 있었다. 오늘은 이곳이 목적이 아닌지라 슬쩍 곁눈질로 훑어보곤 이내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지리산 가슴팍을 훑어가며 구불구불 ‘묘기대행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경치에 때로는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주말인지라 많은 이들이 지리산을 찾았다. 성삼재로 향하는 길목에는 승용차들이 한쪽 도로변에 즐비하게 서 있었다.

화개장터에선 아직도 전라도와 경상도가

누군가 제안을 했는지 잠시 노고단 자락 시암재에서 경치구경을 하고 가자고 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버스는 힘들게(?) 고갯길을 기웃기웃 올라가더니 어느덧 성삼재에 다다랐고 이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조금 매려가니 시암재가 있었다.
누군가 시암재에 관한 시를 한 수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리망(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정말로 있다. “굽이굽이 꼬불꼬불/ 기어서 올라선 곳/ 지리산 시암재// 멀리/ 겹겹이 둘러선 능선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 구름은/ 하늘과 봉우리를 이어주고 산안개로 흘러내린다(하략)” 정말 버스를 타고 오를 때 느낌이 이러했다.

모두 이곳에서 한 숨 크게 쉬고 지리산 구경에 나섰다. 역시 지리산 자락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빨치산이 숨어 있으면 쉽게 찾지 못하는가 싶었다. 몇몇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얼른 아내의 똑똑손전화(스마트폰)로 사랑스런 모습으로 한 장 찰칵 했다.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화엄사 방향으로 향했다. 천은사 입구를 지나 구례 화엄사 주차장에 이르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오늘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없었다. 분명히 배터리 충전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이상이 있었는지 충전표시등이 빨간불이 들어왔다. 마음이 초조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조마조마 했다.

식당에 도착해 산채비빔밥에 구례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산수유주를 가볍게 한잔씩 했다. 이 식당은 역시 이 땅의 민주화 투쟁에 힘썼던 이의 식당이어서 더 반가웠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1906~1953)의 은거지였고 최후를 장식한 ‘빗점골’이라는 곳으로 떠났다. 버스는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 했다. 조영남의 대표곡 ‘화개장터’가 떠올랐다.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자연스럽게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다 화개마을 지났다. 그곳에서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난다는 화개장터를 구경하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임란, 동학 그리고 빨치산의 근거지

양쪽으로 산이 치솟은 벛꽃길로 유명하다는 이 길을 버스는 한참을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이었다. 전남과 경남의 경계에 있다. 5백여년 전에 형성된 의신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란을 피해 이주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1908년 동학농민군 30여명의 전몰, 이현상 사령관의 최후 등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지리산과 지리산의 삼신동(청학동)에 얽힌 전설이 깃들어 있는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의신마을은 원래 한자로 ‘依神’ 또는 ‘義神’이었으나 경술국치 이후 의병 활동 근거지로 재난을 입게 되자 ‘神’자 대신 ‘信’자를 사용해 지금은 ‘義信’마을로 고쳐 쓰고 있다. 원래 의신마을의 ‘神’자 유래는 지리산의 삼신동 개념에서 비롯했다. 의신마을 4km 아래에 있는 ‘神興’과 덕평봉 일원의 ‘靈神’등 ‘神’자가 든 세 곳을 삼신동으로 풀이했던 것이다. 한때는 마을 전체가 사찰이어서 불교문화의 산실이기도 했다 한다.

특히 의신마을은 전란 또는 혼란에 휩싸일 때마다 그 소용돌이에 말려 큰 홍역을 치르기도 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신마을 사람들 중 당시 사상이나 이념에 물들거나 심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은 의신마을의 터가 좋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늘 아래 첫 마을로 잘 알려진 이곳은 40여 가구가 살면서 고시라가 특산품이고 고로쇠 수액도 맛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의신마을은 질곡의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누가 그랬던가, 총알보다, 목숨보다 더 강하다는 이념, 그 이념의 결집체였던 파르티잔(빨치산)의 투쟁, 그 중심지에 도착해보니 내내 마음이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의신마을 빗점골에서 최후를 장식했고 그 오른쪽 대성골은 3일 밤낮으로 쏟아진 포탄과 화염으로 계곡은 붉은 피로 흘러내렸다는 곳이다.

또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된 16살 새색시가 보고픈 남편을 만나기 위한 그 간절한 소망 하나로 18살에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어야만 했던, 정순덕(1933~2004)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점도 지리산이었고 마지막 빨치산으로 체포(1963.11.12.)된 곳도 이곳 지리산이었다. 정충제의 글 <실록 정순덕>(대제학)에서 그녀의 눈물을 가슴 속으로 읽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념의 땅 가슴으로 삭아있네

이처럼 지리산의 의미는 어찌 보면 빨치산 투쟁의 역사를 통해 우리 현대사에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까. 물론 그때의 흔적들이야 지금 찾아 볼 수 없지만 당시 절대가치였던 그 순수한 이념의 땅이 바로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은 이현상이 누비던 곳이다. 그를 가리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 ‘외로운 방랑자’, ‘고독한 공화국 영웅’,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 총수’라는 이름이 붙어 다닌다. <남부군>의 저자 이태 씨가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술회하는 말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현상’을 알기 위해 지리산을 찾았고 주변 사람들을 만났으며 기록들을 확인했지만 그의 실체를 알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현대사에서조차 잘 다루기 힘든 부분이었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조차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기리는 사람들은 지금도 몇몇 남아있지만 이제 세월은 흘러 하나 둘 이 땅을 떠나고 있다.
지리산 시인으로 알려진 이원규 씨가 쓴 이현상에 관한 시 <이현상, 내 마음속의 빗점골> 한 구절을 찾아 읽어봄직 하다.

이현상, 내 마음속의 빗점골

/이원규

내 마음속의 지리산 빗점골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사람
성큼성큼 검은 산으로 들어간 산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흔들리며 일어서는 검은 산 지리산
그 아래 아카시아 뿌리 내린 돌무덤속
하얀 발가락 마디마다 꿈꾸는 별
절망하거나 다시 절망할 때
혁명의 날개를 잃어 가 닿을 수 없는 독백들이
끝내 바둥거리다 곤두박질 치는 지점마다
지고 또 피는 홀아비바람꽃들
고단한 분단 반세기의 표류 속에서 끝내
서러운 꿈 하나 낚아 올릴 수 없는 밤
별의 꼬리를 부여잡고 한없이 꿈틀대며 승천하는
내 남루한 기억 속의 빨치산
지금 여기는 어디 쯤인가
언제나 혁명을 꿈꾸면서도
지순한 노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지금
눈물 속으로 다시 눈물이 고여 오고
허물을 벗겨 보면 다시 허물이 도사리는
지금 여기는 어디 쯤인가
곳곳에 하나씩의 비밀 아지트를 남겨 두고
모두들 살해당한 지리산 빗점골
그곳에서 나는 무련, 그대를 만난다
도리어 새장 밖으로 갇혀 있는 세상을 위해
새장 속의 새는 결정적으로 날개를 버린다
무덤 밖으로 묻혀 있는 세상을 대신해
잠들지 못하는 주검의 두 눈에도
마침내 눈물이 흐른다
비틀거리는 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바짝 뒤따르는
음울한 바람의 눈초리
그대 이십세기의 꿈은 새로워지는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하늘은
이내 무너져 내리고 내 회상의 지리산 빗점골
어느 모퉁이엔가 웅크리고 앉은 산사람이
더 깊이 고개 숙이는 늦가을 저녁 무렵
뜨거운 나의 이마를 떠나
끝없이 질주하는 한줄기 별빛
나는 정녕 나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나는 정녕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는가
여태 매듭 하나 풀지 못한 예지의 더듬이를 보듬고
여백으로 비워둔 내 오랜 잠의 속살
그 속으로 수많은 잔뿌리를 내리며
먼저 나무처럼 굳게 서는 법을 배우며
뒤늦게 빨치산 위령제를 올린다
그대 산사람의 타는 듯 메마른 입술 사이로
한국 현대사의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도 내 심장의 자물쇠를 잠근다 열쇠를 버린다
산 너머 산이 있고
바람의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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