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를 주목하라 1. 진시영, 빛을 말하다
이 작가를 주목하라 1. 진시영, 빛을 말하다
  • 정인서 /미술경영
  • 승인 2012.10.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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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흐름으로 인간성의 긍정메시지 전달
‘미디어아트’도시 선점에 시, 대학, 미술관 등 머리 맞대야
▲ 진시영 작가는 최근 내놓은 작품 '나전칠기' 앞에서 소통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는 제게 화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죠. 그러나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뒤 그림에 자연스레 빠져들었던 것을 하나의 운명처럼 여긴다고나 할까요.”

그는 아버지의 영향이나 배경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작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서양화를 그렸고 자신도 그 길을 뒤따라간다는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작업들은 굳이 말을 붙이자면 공간을 활용하는 예술이다. 이 ‘공간예술’은 설치예술과는 좀 다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런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단순한 페인팅에서부터 예술의 영역 구분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융합시켜나가는 것이다.

이는 그가 2002년 이후 4년 동안 미국 뉴욕에 있는 플랫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뉴폼(NewForms)을 전공한 영향이 크다. 말 그대로 새로운 형식을 다루는 학과이다 보니 미술,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전공자들이 모여 자신의 영역과 다른 영역을 혼합해나가는 창의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풀어나갔다. 개인의 이야기에는 소통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느낌을 타자와의 소통으로 작품 속에 쏟아냈다.

최근에는 사회적 관계로 진화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 느끼는 공통의 인간존엄성, 자연의 감수성을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이라는 것이다. 예술로서 치유는 아닐지라도 긍정적 목적을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1회 비엔날레 때 빌 비올라 영향 받아

1971년생인 진시영은 조선대 미대 학장을 지낸 진양욱 화가의 2녀1남 중 막내이다. 누나들은 피아노와 첼로를 전공했고 자신은 그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미술보다는 다른 전공을 말씀해 그도 처음에 이를 따랐다. 다른 학과 진학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진 작가는 “1984년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시자 조선대측으로부터 부친 유산을 관리해주고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다”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박철웅 당시 총장이 조선대 미대 교수들에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후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후 어린 진시영은 당시 황영성 교수(현 광주시립미술관장), 김종수, 최영훈, 진원장 교수 등과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늘 미술작품을 보게 되었고 이런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드가미술학원을 운영 중이던 최연섭 화가를 찾아가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할 요량으로 조선대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광주에서 제1회 비엔날레가 열렸고 여기에 참여한 빌 비올라 설치작가의 보조를 맡고 영어통역 등을 하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깨닫는 계기를 접했다. 서양화과 학생으로서는 낯설었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 충격과 변화의 동인을 주기엔 충분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1999년부터 2년 동안 황영성 교수의 개인 조교처럼 작품 진행을 돕고 정리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당시에 황 교수의 작품은 가족시리즈와 황소시리즈로 새로운 경향을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관 조교를 맡기도 했다.

다양한 영역 넘나든 작품 융합 선보여

그는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몇 번의 비엔날레를 보면서 세계미술의 흐름을 직접 겪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002년 플랫인스티튜트에서 뉴폼을 전공했던 것이 이같은 과정에서 비롯됐다.
뉴폼에서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융합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새롭다고 해서 어렵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가장 기초적인 페인팅에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늘 공부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고 도전정신을 키워주었다.

최근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발표한 작품 가운데 ‘나전칠기’의 경우 우리나라 고유의 나전칠기에 자개의 효과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LED와 접목한 목공예 작품이다. 여기에 LED 옷을 입고 가야금 소리에 맞춰 살풀이춤을 추는 사람을 영상에 등장시키는 등 다양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감독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올해 열렸던 광주비엔날레 행사와 맞물려 광주문화재단이 9월5일부터 7일까지 옛 전남도청 앞 광장과 주변 건물 등을 이용한 ‘미디어아트2012’에 국내외 미디어작가 37인을 참여시켜 행사를 치러낸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번 미디어아트2102는 광주가 역사와 최첨단 현대미술이 만나는 새로운 빛의 도시로 도약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이미 광주시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99년에 대상, 2000년에 무등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그만큼 회화적 작품으로는 밑바탕이 튼튼하다 할 수 있다. 또 2006년에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에 초대 출품했고, 2007년에 신세계미술상, 2011년에 광주미술상 등을 수상할 만큼 그가 미술계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4년 이후 9번의 개인전과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소통은 사회적 관계로 진화 중

진시영은 최근 인간의 만남이 직접 대면이 아닌 다양한 통신망을 이용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는다. 예전에는 만남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사회적 소통망(SNS)이라는 매체를 거쳐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LED와 그 빛의 잔상으로 표현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그는 스스로 미디어작가로서의 완성의 과정을 향해 가고 있다”면서 “빛과 색이 가진 찰나적인 아름다움을 흐름(Flow)이라는 현상을 통해 작품에 대한 유희와 과정에 대한 관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흥철 큐레이터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통의 통합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주목은 인간의 상호작용성을 추상적 소프트웨어로 하여 비트의 이동을 아날로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신체와 결합된 미디어 공간 안에서의 움직임을 정보화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가시화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자의 영역이 상호 반영되어 감각 영역의 경계확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했다.

진시영은 “광주시가 유네스코 미디어창의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제 미디어아트 분야의 개척도시로서 그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면서 “지역 사회의 여러 계층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융합영역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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