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붉은 색이다?
금은 붉은 색이다?
  •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2.10.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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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세계의 특이한 규칙들
머리카락 10만개로 쪼갠 미세 입자, 금속의 색깔도 달라져
표면적 매우 커지고 피부 침투력 강해 화장품에도 이용

하나의 국가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규칙이 필요하다.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일정한 규칙, 즉 법이 없으면 혼란에 빠진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나노 공화국도 마찬가지다. 나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나노 공화국을 탐색했다. 찬찬히 관찰해보니 꿀벌이나 개미의 세계처럼 나노 공화국에도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노 공화국 국민의 자격을 정의하는 ‘나노’는 그리스어 ‘난쟁이(nano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얼마나 작을까? 사람 어른의 키는 대략 2미터 이내다. 손톱은 1미터의 100분의 1인 1센티미터이고, 머리카락의 직경은 대략 1밀리미터다. 사람 피 속에 들어 있는 적혈구는 머리카락을 1,000개로 쪼갠 마이크로미터 정도의 크기다.

나노미터는 그것을 다시 1,000개로 나눈 것으로 머리카락을 10만개로 쪼갠 크기, 혹은 DNA 한 개의 크기와 비슷하다. 나노미터를 다시 10개로 더 쪼개면 원자 크기가 된다. 따라서 나노미터는 10의 마이너스 9제곱(10⁻⁹), 즉 10억분의 1미터를 뜻한다. 만약 사람이 지구만큼 크다면, 1나노미터는 축구공 한개 크기 정도의 비율이다.

나노기술은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지구의 반대편 미국 워싱턴에서 날아다니는 파리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기술이다. 보통 나노기술은 1 ~ 100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을 뜻한다. 100나노 이상은 마이크로 단위로 우리가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보통 세상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나노 세계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점에서 보통 세상에서 통용되는 물질의 법칙과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첫째, 물질의 구조가 다르다. 탄소를 예로 들어보자.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이웃하는 네 개의 원자끼리 공유결합을 통해 3차원 입체 네트워크를 이뤄 매우 단단해진 것이다. 흑연은 탄소 원자들이 거북 등처럼 육각형의 판상으로 연결되고, 이런 판들을 침대 시트 모양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흑연을 연필심으로 사용하는 것은 흑연가루가 종이에 쉽게 달라붙는 성질을 이용한다. 이는 탄소 원자들이 만든 육각형 판과 판 사이를 연결하는 ‘반데르발스 힘’, 즉 분자와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약한 결합이 끊어져서 흑연가루가 종이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소가 덩어리째 결합하여 만들어진 물체를 벌크소재라고 한다. 하지만 수십 개에서 수천 개의 탄소 원자가 하나씩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나노 크기의 고체는 벌크소재와 구조 자체가 다르다.

탄소 원자 하나하나를 배열하여 일정한 구조체를 조립할 수 있다. 최초의 나노 물질은 풀러렌이다. 풀러렌은 탄소 원자 60개가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된 특수한 분자구조다. 또 다른 나노 물질인 탄소나노튜브는 흑연 박판 하나가 동그랗게 말려서 직경이 수 나노미터인 통 모양에다 그 끝이 풀러렌으로 막혀 있다. 풀러렌과 탄소나노튜브는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철강소재보다 훨씬 강하고 탄성이 좋아 다양한 분야에 이용된다.

둘째, 물질의 성질이 달라진다. 금을 예로 들어보자. 금은 노란 빛깔이다. 하지만 나노 크기의 아주 작은 분말로 만들면 색깔이 붉게 변한다. 나노 크기의 입자로 만들어 물에다 풀어 놓은 상태에서 자외선을 쪼여주면 크기에 따라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반사돼 나오는 색깔이 다른 것이다.

요즘 새로운 발광체로 각광받고 있는 LED도 입자의 크기를 나노 수준에서 조절함으로써 청색, 적색, 백색을 쏟아 낸다. 물질은 원자 수준에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성질을 나타내지 않는다. 원자 몇 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분자가 됐을 때 비로소 물질마다 고유한 물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원자의 배열 순서나 방식을 조절함으로써 물성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는 것이 나노기술의 가장 큰 특징이다.

셋째, 표면적과 매우 커진다. 나노 크기로 쪼개면 입자의 숫자가 엄청 늘어난다. 접시 위에 길이가 1미터인 정육면체 각설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균일한 크기로 정육면체 모양을 유지한 채 쪼개면서 크기를 줄여나간다. 처음 정육면체는 양변이 1제곱미터인 면 여섯 개, 즉 6제곱미터다.


정육면체의 세면을 각각 2등분하면 표면적이 1/2×1/2×6, 즉 3/2제곱미터인 정육면체가 여덟 개 생겨 총 표면적이 12제곱미터가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정육면체의 한 변이 1나노미터가 되면 표면적은 10의 9제곱미터, 즉 10억 제곱미터로 엄청나게 늘어난다. 물질을 나노크기로 쪼갤 때 이렇듯 표면적이 매우 크게 늘어나는 점은 나노기술을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성질이다. 은나노 입자가 그런 경우다. 은의 살균 효과는 예전부터 잘 알려졌다.

은나노 세탁기는 은을 나노입자 크기로 만들어 표면적을 크게 하여 살균효과를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것이다. 화장품도 나노크기의 액체로 만들면 기름과 물이 잘 섞이고, 피부 흡수력이 매우 좋아진다. 나노기술에 관한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 프랑스 화장품 회사 ‘로레알’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노 입자의 표면적 증대는 촉매효과를 크게 촉진한다. 이런 성질은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기, 발전소 폐가스처리 공정, 태양전지, 의료용 나노조영제 등에 활용된다.

넷째, 표면장력이 매우 커진다. 입자가 나노크기로 작아지면 서로 엉겨 붙는 경향이 강해져서 나노 입자는 다루기가 매우 힘들다. 다섯째, 나노입자가 기체나 액체상태 일 때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운 운동은 일정한 방향이 없이 지속적으로 아무데나 떠돌아 다니는 운동을 말한다. 보통 세계에서는 주로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물질이 움직인다. 하지만 나노 세계에서는 중력의 법칙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필자가 소속된 나노바이오연구센터는 입자의 미세한 크기를 조절하여 다양한 일들을 한다. 센터가 보유한 초임계유체추출 장비는 녹차, 창포, 홍어, 계란, 미세조류 등 천연물에서 사람 몸에 이로운 생리활성 성분이나 향기를 뽑아내는 장치다. 천연물을 말려서 분말로 만들거나 혹은 액체 상태에서 작업을 한다.

매로 사용하는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 분자가 추출하고자 하는 입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표적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천연물 분자만을 밖으로 끌고 나오는 원리다. 이때 입자 크기를 다양하게 조절하여 입자의 표면적을 넓힘으로써 생산효율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입자가 너무 작아지면 오히려 표면장력과 브라운운동 때문에 자기들끼리 서로 엉겨 이산화탄소 분자의 통로를 막아버려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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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나노과학기술여행(한국과학문화재단 펴냄)’ ‘나노바이오(리처드 존스)’ ‘창조의 엔진(에릭 드렉슬러)’ ‘바이오테크시대(제레미 리프킨)’ 등 나노관련 서적과 다수의 논문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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