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재미있지만 역사를 왜곡했다
@[광해] 재미있지만 역사를 왜곡했다
  • 김영주
  • 승인 2012.10.12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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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는 폭군으로 알려진 광해군을 개혁군주라고 말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얼마든지 달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Fact로 말하는 게 아니라 Fiction으로 말한다. 1%가 팩트이고 99%가 픽션이니, 군것질하듯이 순전히 재미로 보아야 한다. 뼈대는 소설[왕자와 거지]이고 살집은 영화[왕의 남자]이다. 이병헌으로 시작해서 이병헌으로 끝난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3847&videoId=38439&t__nil_main_video=thumbnail

이병헌, [아이리스]처럼 매력적이진 않지만 상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짜 광해군에서 그러하고 가짜 광해군에선 덜 어울리고 연기력과 매력이 좀 떨어진다. 한효주의 단아한 왕비 모습이 깨끗하고 곱고 우아하다. 이 영화에 숨은 공로가 크다. 류승룡, 산적 같은 인상이 [활]에선 잘 어울렸지만, 그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항상 부담스럽다. 김인권의 그 특유한 캐릭터가 이 영화에선 별로 살아나지 않아서 아쉽다. 김명곤, 오랜만이다. 간악하고 음험한 모습이 참 잘 어울려서 놀랐다. [마파도]를 만든 감독이어선지, 코믹한 연출에 상당한 재주가 있다.

무엇보다도 의상 · 무대 · 소품이 그리 거슬리지 않게 화려해서 좋았다. 중궁전 뒤뜰의 고아한 꽃담장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사뭇 반가웠다. 몇 년 전 어느 겨울날, 따사로운 햇볕이 깃든 그 곳을, 내 얼마나 좋았던지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되돌아보고 되돌아보았다. 이 영화에선 봄날의 그 수줍은 분홍빛들과 함께 하니 더욱 황홀했다. 그 단아한 왕비가 다소곳이 처연하게 서있는 장면으로 보여주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TV사극드라마에서 의상 · 무대 · 소품이 역겨울 정도로 유치하다. 그 드라마에 빨려드는 걸 아예 훼방친다. 눈뜨고 보아줄 수가 없어서 10분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TV를 꺼버린다. 그 재미있다는 [해·품·달]도 겨우 20분쯤 보다 말았다. 사극영화에서도 그런 역겨움이 없지 않지만, [후궁]에선 의상이 그나마 괜찮았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처럼 의상 무대 소품이 모두 황홀하게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만나고 싶다.

* 대중재미 A0( 내 재미 B0 ), * 영화기술 B+, * 감독의 관점 : 민주파 B0. 맨 끝에 5분은 지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 누구에게나 공헌이 있고 과오가 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군주이기에, 공헌을 깍아내고 과오를 과장한다. 새로운 해석과 역사왜곡은 백지 한 장 차이이지만 전혀 다르다. 난 광해군이 명나라의 쇠락과 여진의 득세 사이에 사대교린事大交隣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보전한 공로는 크다고 보지만, 개인감정에 휘둘려서 이이첨처럼 간악한 소인배를 통치기간 내내 최고 실세로 키우고 앞세워서 폭정을 저지른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개혁군주라고 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선 스토리가 광해군과 허균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허균이 충신으로 나온다. 잘못이다. 광해군 시절에 최고 실세는 허균이 아니라 이이첨이다. 허균은 자기 보신을 꾀하려 간신배 이이첨에게 아부하고 그 간악한 패악질에 앞장선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오히려 허를 찔려 죽게 된다.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허균을 최고 실세의 충신으로 그리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허균을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은 아마 그의 [홍길동전]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작품과 그의 행실을 구분해야 한다. 그가 글솜씨도 좋고 범사에 재주가 뛰어나며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기인奇人의 풍모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참된 기인이라면 권력을 멀리 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서 탐욕을 부렸으니, 그는 사이비 기인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있다. 단기적으론 훌륭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론 음흉한 사람이 있다. 변화인지 변절인지 가름한다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올바르게 산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허균은 [홍길동전]이 아무리 개혁적이라해도 행동이 간악한 간신배의 하수인이었다. 그래서 [광해]는 역사를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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